브랜드, 기업경쟁력의 원천

평생 동안 끊임없이 논쟁의 불씨를 지피고 다녔던 미국의 경제학자 겔브레이스(J. K. Galbraith)는 과거 광고를 제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유의 냉소가 진하게 베인 그의 주장은 곧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겔브레이스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필요(needs)’이지 ‘욕구(wants)’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양복 자켓에서 멋지게 ‘몽블랑’ 만년필을 꺼내 카드전표에 서명을 하는 우리의 김부장이나, ‘구찌’ 핸드백이 아니면 차라리 맨손으로 다니겠다는 우리의 김대리는 참으로 어리석은 바보들일 뿐이다. 우리가 필요(needs)로 하는 것은 글씨를 쓸 수 있는 ‘필기구’와 물건들을 넣어 다닐 수 있는 작은 ‘가방’이지 욕구의 산물인 ‘몽블랑’이나 ‘구찌’는 아니기 때문이다. 겔브레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브랜드란 기업들이 소비자들을 현혹하기 위한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치일 뿐이다.

하지만 겔브레이스의 전성 시대가 지난 요즘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뛰어난 브랜드 가치를 지닌 상품이 우리를 실망시킬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브랜드란 무엇인가?

브랜드는 말 그대로 ‘이름’을 뜻한다. 어휘적으로는 ‘의미와 연관성을 지닌 일체의 라벨’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브랜드’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성공적인 브랜드라면 그 이름만 들어도 우리의 뇌가 왕성한 연상 작용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볼보’는 ‘안전(safety)’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볼보를 타본 사람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볼보=안전’이라는 공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보처럼 성공적인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브랜드(볼보)와 브랜드 컨셉(안전)을 하나로 융화시킬 수 있는 기업의 역량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브랜드’ 그리고 ‘성공적인 브랜드’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다.


왜 강력한 브랜드가 필요한가?

“물건만 좋으면 됐지 도대체 왜! 이름을 따지고 그래?”.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물건을 만들었다고 해서 고객이 스스로 찾아와 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수요가 넘치는 세상이다. 볼펜 한 자루만 해도 그 종류를 세기가 힘든 세상이 됐다. 내 것을 알리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숙이 뿌리박아 두지 않는다면 경쟁자에게 고객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브랜드와 브랜드 컨셉을 결정하고, 그것에 맞춰 광고와 홍보 활동을 진행하는데 따르는 비용과 노력이 아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강력한 브랜드는 기업의 항구적인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다. 코카콜라의 CEO였던 로베르토 고이수에타(Roberto Goizueta)의 말을 되새겨 보자. “화재로 우리 회사의 모든 공장과 시설이 불에 타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불이 우리 회사의 가치(브랜드)까지 소진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탁월한 브랜드 전략이 시장을 바꾸다!

극적인 사례가 하나 있다. 아마도 30대 이상이라면 조선맥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동양맥주(현재 OB맥주)와 함께 국내 맥주 시장을 나누고 있었지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단연 동양맥주였다. 조선맥주가 생산하던 ‘크라운 맥주’는 특유의 잡맛으로 인해 시장에서 환영 받지 못하던 제품이어서 동양맥주의 독주는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됐다. 만년 2위가 당연하게 보이던 조선맥주가 새로운 브랜드가 나온 지 3년 만에 업계 1위가 된 것이다. 새로운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 변함없었던 두 회사간의 시장 분할 비율이 깨지고 말았다.

‘크라운 맥주=맛없는 맥주’라는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조선맥주는 ‘하이트(Hite)’라는 새로운 브랜드 뒤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하이트=깨끗한 맥주’라는 인식을 소비자의 마인드에 자리잡게 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브랜드 구축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천연 암반수를 사용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물 논쟁을 공론화하고 ‘깨끗함’을 강조했다. 매일 시음회를 개최했고 광고 활동을 크게 강화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은 하이트를 깨끗한 맥주로 확고히 인식하게 됐고 불과 1년 뒤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맥주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단일 브랜드로는 드물게 시장 점유율 50%가 넘는 뛰어난 성과를 내며 회사와 맥주 시장의 모습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었다.


브랜드, 그 진정한 가치

브랜드는 단순히 제품의 이름이 아니다. ‘브랜드’라는 세 단어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의미가 숨어있다. 고객이 브랜드를 통해 얻게 되는 보이지 않는 만족과 가치, 그리고 그로 인해 기업이 얻게 될 지속적인 수익은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라 할 수 있다. 조금 더 깊이 있는 통찰을 시도한다면 브랜드는 기업 경쟁력의 원천과 다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코카콜라라는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85조원에 달하는 코카콜라 음료의 ‘브랜드 가치’이다. ‘코카콜라’라는 브랜드가 병에 표시되지 않은 채로 생산된 콜라를 상상할 수 있는가? 꽤 오래 전 미국의 한 회사가 코카콜라 원액을 공급 받아 자사의 브랜드로 더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카콜라’만큼 잘 팔리지 않았다.

출처: 2004년 4월 (주)선진 사보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