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생산성 그리고 몰입의 관계

한 10년 전쯤 친한 친구가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를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한 달 후 그를 다시 만났을 때에는 백수가 돼 있었습니다. 너무 갑갑하고 미래가 안 보여 앞뒤 안 보고 퇴사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일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퇴근 시간 이후에도 상급자가 집에 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때워야 했다고 합니다. 직급 순으로 퇴근을 하다 보니 자정이 다 돼서야 집에 도착하는 일이 반복됐고요. 조직 문화가 이렇다 보니 업무도 회사가 굴러갈 수 있을 만큼만 했던 모양입니다. 의욕적으로 일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미 많은 분들도 알고 계시지만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길기로 유명합니다. 2014년을 기준으로 OECD 회원국이 총 34개국인데 우리나라는 멕시코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간 2,124시간을 일한다고 하네요. 반면에 OECD 평균 노동시간은 1,731시간으로 우리나라보다 393시간이 적습니다.1)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높은 노동강도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을까요?

2014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가장 높은 3개의 나라는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미국입니다. 금액 단위로 환산해 보면 $87.1, $83.1 그리고 $61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0.4로 평균에도 못 미치는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2) 참고로 미국은 우리보다 335시간 덜 일하지만 생산성은 2배가 넘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일을 이렇게 많이 하는데 왜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바닥을 맴도는 걸까요. 저는 앞서 친구가 겪었던 경험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회사에 오래 묶여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는 무기력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우리의 생산성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졌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서 직장 몰입도와 관련된 의미 있는 자료를 하나 발견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몰입(flow)은 사전적으로 주위의 모든 잡념, 방해물들을 차단하고 원하는 어느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일을 말합니다.3) 몰입도(engagement)란 그 집중의 정도를 의미하고 Work Engagement, Employee Engagement, Workplace Engagement와 같이 대상을 바꿔 조금씩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갤럽(Gallup)의 조사는 여러 나라에서의 Workplace, 즉 직장에서 일에 몰입하는 정도를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우리나라의 직장 몰입도(Workplace Engagement)는 하위권 수준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은 업무에 몰입하는 직원의 비중이 11%인 반면 몰입하지 않고 대충 일하는 직원이 67%, 적극적으로 몰입하지 않고 방해가 되는 직원이 23%에 달했습니다. 반면에 최상위권에 자리한 미국은 각각의 비중이 30%, 52% 그리고 18%로 상대적으로 높은 몰입도를 보여 뛰어난 노동생산성의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4)

앞서 한국의 경우 노동시간이 많지만 노동생산성은 낮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몰입도도 많이 떨어지고요.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궁금해서 노동시간과 시간당 노동생산성의 상관관계를 확인해 봤더니 높은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을 모두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하게만 본다면, 노동시간이 적어질수록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아마도 노동생산성이 높은 나라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단단히 뿌리내려 있어, 야근 없이 정해진 시간 내에 업무 그 차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직원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들은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들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쭉 모아 정리해 보면 어느 정도 비슷한 처방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일해서 발생하는 노동생산성 저하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을 확인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좀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함께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래에 TINYpulse가 제시한 설문 내용을 옮겨봤습니다. 직원 몰입도(Employee Engagement)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설문입니다.


직원들에게 물어야 하는 20개의 직원 몰입도 질문들
5)

직장 만족도
1. 회사에서 얼마나 행복한가요? (1~10 사이의 숫자)
2. 지금 회사를 누군가에게 추천할 생각이 있나요?
3. 당신의 경력 또는 진급 경로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나요?
4. 자신의 일과 삶의 균형에 몇 점을 주고 싶은가요? (1~10 사이의 숫자)
5. 만약, 내일 당장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감사와 존경의 느낌
6. 회사에서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느끼나요?
7. 당신은 얼마나 자주 당신의 관리자로부터 인정을 받나요?
8. 당신은 마지막으로 완수한 큰 프로젝트에서 인정을 받았나요?

직원 장기근속
9. 당신은 회사에서 당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10. 당신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재 직장에 다시 지원할 생각이 있나요?
11. 1년 후에도 현재 직장에서 일할 것으로 예상하나요?
12. 경영진이 당신의 피드백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나요?

조직 문화
13. 당신은 경영진이 투명하다고 느끼나요?
14. 눈을 감은 채로, 당신은 우리 조직의 비전, 가치들을 낭송할 수 있나요?
15. 회사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3개의 단어는 무엇인가요?
16. 당신의 관리자를 위한 피드백을 주는 일이 얼마나 편하게 느껴지나요? (1~10사이의 숫자)
17. 당신은 동료들이 서로를 존중한다고 느끼나요?
18. 우리가 조직의 가치들을 따라 진실되게 생활하고 있다고 믿나요?
19. 우리의 경영진이 긍정적인 업무 문화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나요?
20. 회사 생활이 즐거운가요?


참고:

1) http://stats.oecd.org
2) http://stopthistraino1.blogspot.kr/2014/10/long-overtime-work-of-korean-workers.html
3) https://ko.wikipedia.org/wiki/몰입
4) https://hbr.org/web/infographic/2013/11/workplace-engagement-around-the-world
5) https://www.tinypulse.com/blog/sk-employee-engagement-survey-questions
6) Image courtesy of free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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