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전문가 시대

나는 몇 일전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 최근에 나는 ‘보보스’,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80/20 법칙’ 세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 권 모두 매우 유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의 직업과 부, 전문가에 대한 부분은 세 권 모두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읽은 책은 세 권인데 얻은 것은 단 하나였다. “21세기는 전문가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로 성장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전력을 다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욕망과 재능이 만나는 곳’이 바로 ‘성공의 열쇠’가 묻혀있는 장소인 것이다. 어떤 독자는 실망할지도 모른다. “21세기는 전문가의 시대라는 거 그건 당연한 것 아니냐?”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언제나 전문가는 부족하고 전문가의 길은 힘들고 어렵다는 것일까? 단순히 철저한 실천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끈기와 신념이 부족해서 일까? 나는 그 이유를 “지식사회에 대한 불명확한 이해 와 전문가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찾는다.

최근에 우리는 ‘지식기반 경제’ 혹은 ‘지식사회’라는 용어를 흔하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지식사회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일상을 사는 우리 주변에는 아직까지 큰 변화가 없다. 실업이나 연봉제 같은 것들이 ‘조짐’을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좀처럼 ‘지식사회’와 연결되지 않는다. 지식사회에서는 ‘지식’이 핵심이라는데, 이 정도는 이해를 하겠지만 그것이 바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이고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숨은 그림찾기’ 같다. 존재하지 않는 것, 보고 느낄 수 없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바로 내가 보고 느낄 수 있어서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어야 생각이 바뀌고 변화를 위한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식사회의 전형적인 증거로 내세우는 ‘빌 게이츠’는 적절한 예가 아니다. 빌 게이츠는 지식사회의 ‘증거’가 아니라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빌 게이츠같은 사람이 지식사회를 탄생시킨 것이 아니라 지식사회가 현재의 빌 게이츠를 있게 했다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다. 과거에도 빌 게이츠와 같이 능력있고 도전정신이 충만한 사람은 많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 젤로’, ‘세익스피어’, ‘베토벤’, ‘괴테’같은 인물은 전혀 빌 게이츠의 능력에 모자라지 않다. 아니 그 이상이며 천재라고 불릴 수 있는 비범한 인물이었다. 한 분에서 ‘대가’를 이룬 전문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빌 게이츠 같은 부를 쌓지는 못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의 시대와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재능있는 경영컨설턴트인 ‘리처드 코치'(Richard Koch)는 이렇게 말한다. “세익스피어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 최고의 재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들은 자신의 재능, 창의력, 명성을 이용해 그 시대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어야 마땅한데, 실제로 그들의 수입은 오늘날로 따지면 평범한 재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80/20 법칙, 21세기 북스, p 146)

무엇이 현대를 과거와는 너무나도 다른 ‘지식사회’로 변화시켰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두 가지가 ‘지식사회’의 형성과 현재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언급할 수는 있다. 하나는 ‘정보기술과 매스컴’이다. 정보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 시켰다. 현대 ‘스티븐 킹’의 소설은 과거 ‘세익스피어’의 소설보다 세계의 고객들에게 더 빨리 확산되고 더 많이 팔리게 된다. 세익스피어는 당시에 자신의 지역 혹은 인접 국가 정도에서나 알려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스티븐 킹,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떠한가? 이것이 지식사회의 일면이다. 두 번째는 ‘최고에 대해 넘치는 수요’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재능 중 반정도만 원하지 않는다. 그는 스티븐 스틸버그의 영화만을 보고 싶어한다. 그는 최고이고 그의 영화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에 비해 반정도의 재능을 가진 영화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반에 반도 못 미치는 수입을 얻게 된다. 리처드 코치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이 ‘지식사회’만의 특징이라 말한다. 1940년대와 50년대 유명한 축구선수나 정치가는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그랬다면 대중들은 그들을 외면하며 돌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대중은 ‘최고’만을 원하고 있다. 최고에게는 언제나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고 있다.

‘전문가’는 매력적이다. 그들에게는 돈과 명예가 따른다. 그것을 쫓다 지친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돈과 명예가 쫓아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피곤하고 한 순간의 상황에 좌지우지된다. 고단한 삶인 것이다. 경영에서만 전문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직업에서 전문가는 요구되고 있다. 나는 머리를 손질할 때, 아무에게나 맡기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자식이 전문가에게 교육받기를 원한다. 스포츠, 예술, 정치 등 모든 분야,그리고 그것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틈새’가 존재한다. 그 틈새는 언제나 열려있고 그곳에는 매우 독특한 전문가가 살고 있다. 전문가에게는 재능과 노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핵심 고객’이 중요하다. 자기 자신의 욕망과 재능이 만나는 곳이 자신의 전문 분야이고 여기서 필요한 것은 ‘자기 성찰’과 ‘노력’이다. 비즈니스의 처음과 끝에는 언제나 고객이 있다. 시장과 핵심고객을 알아내어 확실하게 공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자신의 주 활동무대(시장)는 어디인지, 고객의 요구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과 일치된 부분은 무엇인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고 그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보고 대답할 수 없다면 그 분야에서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다.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

지식사회는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 전문성에 기반한 지식의 시대다. 지식사회는 기회의 시대이지만 결코 평등하지 않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여 전문가로 환생할 것인가! 더 이상 직장과 상황과 시간과 돈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지 말아라. 그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전문가는 풍성하고 자유로운 일상을 산다.

작성일: 200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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