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의 Frequent-Flyer Program

CRM관련 자료나 서적에 가장 많이 소개되는 사례로 항공사의 여행빈도가 높은 승객을 우대하는 프로그램(Frequent-Flyer Program)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사실 FFP는 CRM의 사례로 보기 어렵다. CRM이 등장한 것은 10년이 채 안된다. 본격적인 정보기술 기반의 CRM의 나이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서 FFP는 1981년 5월 아메리칸 항공사의 ‘에이어드밴티지(A Advantage) FFP’가 시초이다. 20년와 10년의 차이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경영 방법/이론의 평균 수명을 고려할 때, FFP는 CRM의 할아버지 격인 셈이다. 그런데 현재는 FFP가 CRM의 아들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FFP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초기의 FFP와 현재의 FFP(최근까지도 전세계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FFP를 가지고 있다)는 거의 차이가 없다. FFP는 승객들에게 비행거리 1마일당 점수를 주고, 나중에 그 점수가 쌓이면 하와이나 기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항공권을 무료로 주는 것이다. 아메리칸 항공사에서 시작된 FFP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마일리지(Mileage) FFP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항공사로 퍼져 나갔다. 에이어드밴티지 프로그램의 급속한 모방으로 아메리칸 항공사는 상처를 입었는가? 이제 FFP는 아메리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른 항공사에서도 전보다 개선된 FFP를 내놓았으므로 시장은 다시 어느 정도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갔다.

하지만 FFP의 목적인 ‘장기적으로 고객과의 좋은 관계를 통한 충성도 효과’라는 점에서 본다면 아메리칸에게는 손해보다 이득이 훨씬 컸다. 뿐만 아니라 아메리칸을 모방한 다른 항공사들에게도 전혀 해롭지 않은 결과였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골치아픈 것중 하나가 ‘가격 전쟁’이다. 가격 전쟁은 대표적인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다. 이득보다는 손해가 많다. 게임의 모든 참가자는 상처만 입게 되고 한 명의 승자도 ‘상처뿐인 우승컵’을 갖게 된다. FFP는 파괴적인 ‘가격 전쟁’에 대한 필요성을 감소 시켜 주었다. 아메리칸 항공사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객은 다른 항공사의 가격에 관심이 줄어들게 된다. 저기 앞에 무료 항공권이 보이는데, 굳이 다른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아메리칸 항공사의 경쟁자인 유나이티드, 델타의 고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격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FFP의 가치는 소중하다. FFP의 다른 장점은 FFP가 최우대 고객(VIP)에게 더욱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업상 빈번한 출장과 긴 사업여행을 하는 비즈니스맨층은 어느 항공사에게나 가장 소중한 고객이다. 이런 소중한 고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자연스럽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FFP이다.

아메리칸 항공사는 에이 어드밴티지의 급속한 모방 속에서도 FFP 가입자 수에서는 언제나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아메리칸의 잘 정립된 컴퓨터 시스템과 효과적인 운영에 있었다. 아메리칸은 FFP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예상하듯이 대규모의 투자는 하지 않았다. 그저 기존의 시스템을 조금 변경하고 좀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이용했을 뿐이다. FFP에도 몇 가지 결점이 있었다.

첫째, 한 고객이 한 가지 이상 여러 프로그램에 가입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충성도도 약해 질 수 있다. 또 하나의 결점은 일단 누적된 여행거리를 현금화한 다음에는 그 충성의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이 ‘골드'(GOLD) 프로그램과 ‘플라티넘'(PLATINUM)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고객에게 좀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자격조건을 요구한다. 그야말로 고객 중의 고객, ‘왕’처럼 모시고자 하는 소수의 고객만이 해당된다. 하지만 보상은 그 만큼 크고 가치있는 것으로 한다.

FFP는 다른 산업의 회사들이 고객 충성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자동차 임대 회사, 신용카드 발급회사, 호텔, 장거리 전화회사 등이 항공사와 제휴하여 자매관계 프로그램을 만들고, 자사의 고객에게 FFP 비행거리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시티뱅크 신용카드는 아메리칸과 제휴했고, 퍼스트 시카고 카드사는 유나이티드와 손을 잡았다. 이들 카드사는 사용금액의 1달러에 1마일의 FFP 비행거리를 인정한다. 장거리 전화회사 MCI는 통화료 1달러에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비행거리 5마일을 부여한다. 프로그램 제휴회사들은 이런 특혜에 대한 대가로 마일당 약간의(보통 1페니 정도) 수수료를 항공사에 지불한다.

‘약간의 수수료’를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제휴프로그램의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지금은 FFP로 고객에게 부여되는 전체 비행거리 마일 중 절반 이상이 지상사업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사의 서비스가 뛰어나다면 이러한 제휴 프로그램은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신규고객을 유치할 수 있게 해준다. 치열한 가격전쟁을 통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시티뱅크 신용카드의 사용자는 여행을 위해 항공편을 생각할 때, 다른 항공사보다는 아메리칸 항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왜 FFP가 CRM의 아버지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현재는 FFP가 CRM의 ‘대견한 자식'(좋은 사례)으로 둔갑한 것일까? 눈치 빠른 독자라면 그 답이 위에 ‘진하게 표시된 문장들 속에 있음’을 눈치 챘을 것이다. 새로운 이론이나 개념에는 훌륭한 증거가 필요한 법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FFP는 CRM 솔류션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회사에게, 그리고 CRM을 못미더워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설득력있는 증거이자 홍보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