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빠르게 무지막지하게 읽은 적이 있었다. 그저 읽은 책의 목록을 늘리는데 급급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참 바보 같은 짓임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았다.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속독의 힘을 알지만, 그것은 다치바나 다카시 처럼 내공이 쌓인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깊이 읽는 것이 넓은 독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정독이 다독을 부르는 것이다. 천천히 읽는 다는 것이 그저 느리게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깊이 읽는다는 것이고 또한 넓게 읽는 것이다. 깊이와 넓이는 상극의 관계가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다.

맹자는 독서를 ‘마음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했다. 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저 책읽기가 ‘지식 습득 이상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좋은 책은 잃어버렸던 마음을 들추어내고 소환한다. 여행이 그렇듯이 바쁘게 지나가는 여행은 재미도 없고 유용하지도 않다. 여행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바로 그 현장에 있는 것’이다. 책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책이고 만족스러운 독서인 셈이다.

‘독서의 기술’에서 모티머 아들러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랑에 빠져서 연애 편지를 읽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읽는다. 그들은 단어 한마디 한마디를 세 가지 방식으로 읽는다. 그들은 행간을 읽고, 여백을 읽는다. 부분의 견지에서 전체를 읽고, 전체의 견지에서 부분을 읽는다. 콘텍스트와 애매성에 민감해지고, 암시와 함축에 예민해 진다. 말의 색깔과 문장의 냄새와 절의 무게를 알아 차린다. 심지어는 구두점까지도 고려에 넣는다.”

책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마음을 담은 독서는 이런 것이다.

좋은 책은 좋은 친구나 스승과 같다. 그렇게 좋고 그렇게 만나기 힘들다. 이탁오라는 사람의 말처럼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좋은 책은 친구같은 스승이고 스승같은 친구이다. 그래서 한번 만나면 헤어지기 어려워 몇 년을 읽고 어떤 책은 평생 함께 간다.

정조 시대의 문인 유한전이 석농 김광국이라는 사람의 수장품에 부친 글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나는 이 말이 진실임을 안다. 애석한 점은 이런 책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읽게 된다. 책을 고르는 지혜는 잘 읽는 것과 함께 간다. 마음을 담아 읽다보면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긴다.

책에 ‘정성’을 쏟으면 그 책은 자신이 담고 있는 비밀과 핵심을 조용히 때로는 격렬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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