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 옵션

파생상품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것 같다. 선물과 옵션이라는 단어가 대중매체를 통해 갈수록 자주 눈에 띄고, 옵션 이론이 재무의 핵심적이고 인기 있는 분야가 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마치 도박을 하듯 거액을 쏟아 붓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투자자들에게는 이러한 사실이 새삼스럽지 않겠지만, 어쨌든 파생상품이 주는 매력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파생상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관련 서적만 살펴봐도 그렇다. 몇 해 전만 해도 손에 꼽을 수 있었던 금융 옵션 이론서들이 그 독자층을 넓혀 가며 서점 책장 하나를 빼곡이 채워가기 시작했다. 아직 그 수가 얼마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전문성과 난해함을 생각한다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실물 옵션(real options) 분야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현재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국내서로는 지금 소개하려는 ‘실물 옵션’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 서점들을 검색해 봤지만 실물 옵션과 관련된 책은 단 한 권뿐이었다. 어쨌든 이 책을 소개하게 된 중요한 이유 하나를 밝힌 셈이 됐다. 원서를 읽을 계획이 없다면 선택은 오직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옵션은 파생상품이다. ‘파생’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옵션은 기초 자산의 가치에 의해 그 가치가 좌우되는 금융 상품 또는 선택권을 말한다. 그렇다면 실물 옵션은 무엇을 뜻하는가? 실물은 금융을 제외한 자산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물 옵션은 그러한 자산들로부터 발생하는 선택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스키 생산을 고려하고 있는 회사의 경우 스키 외에 스키 부츠 생산도 고려할 수 있다. 스키를 생산하기 때문에 스키 부츠와 관련된 유용한 정보를 손쉽게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이 회사는 이른바 ‘확장 옵션’을 갖는 기회를 얻게 된다.

실물 옵션이 각광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여러 가지 선택 대안들을 고려한 투자안의 가치 평가’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꿔주는 것이다. 반면에 전통적인 투자가치 평가 기법들은 평가자의 주관에 따라 결정된 현금흐름을 할인하여 투자안의 가치를 평가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스키 회사의 투자안을 평가하게 된다면 부츠 생산에 따른 기회나 위험은 반영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투자안의 최종가치는 스키 생산의 유무만을 판별해 주게 된다. 부츠 생산에 따르는 수많은 기회와 그 속에 포함된 가치는 무시되는 것이다.

실물 옵션은 이러한 강점으로 인해 전통적인 평가 방법들을 대체할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불확실성이 큰 투자안의 평가에서 그 합리성이 빛을 발한다. 가령 벤치 기업에 투자를 할 때 전통적인 방법은 투자자의 위험부담을 높일 수 있다. 벤처 기업이 겪게 될 상황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물 옵션을 이용하면 벤처 기업이 앞으로 맞게 될 기회와 위험을 포함한 옵션들을 충분히 고려해 단계적인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한꺼번에 많은 자금을 날릴 수 있는 위험을 줄여 주는 것이다.

물론 실물 옵션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 근간이 되는 옵션 이론이 갖는 한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책 어디를 봐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만약 평가 대상의 공정한 시장 가격을 알 수 없다면 과연 실물 옵션이 합리적인 해답을 내 놓을 수 있는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책에는 많은 사례가 있어 도움이 되지만 친절하고 세심한 설명이 다소 부족한 듯하다. 아마도 저자들은 실물 옵션이라는 이론을 소개하기 보다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쓴 것 같다.

어느 정도 짐작했겠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금융 이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재무 뿐 아니라 금융 옵션에 대한 이해 없이는 책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몹시 혼란스러웠다. 이 분야에 정통한 실무자를 위해 책을 썼다면 금융 이론에 관한 어설픈 설명들이 있을 필요가 없는데, 마치 옵션 이론 초심자들을 위해 써 놓은 듯한 내용들이 곳곳에 매설되어 있다. 그렇다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명쾌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확실한 배경 지식 없이는 책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점은 참으로 아쉽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실물 옵션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 안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통 이상의 책이지만 실무자들에게 어울릴 만한 책이다. 옵션 이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빠른 시간 안에 옵션을 이용한 투자 가치평가 방법을 습득할 수 있는 책이다. 만약 쉽고,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실물 옵션을 배우고 싶다면 원서를 찾아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이런 분야의 서적들은 번역서보다 원서가 이해하기 쉽다. 대부분 책의 두께도 원서가 더 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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