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VS 관리

매니지먼트(management)는 어떤 경우에는 경영으로 때로는 관리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경영과 관리라는 두 용어 사이에서 뭔가 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느낀다. 대체로 관리는 계획적, 체계적, 부문적 그리고 내부지향적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에 반해 경영은 위에서 언급한 관리의 의미를 포함하는 동시에 조직 외부, 장기적, 통합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듯 하다. 이런 관리와 경영의 미묘한 차이는 경영학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론적인 경영학의 체계는 크게 미국식 경영학과 독일식 경영학으로 나뉜다. 초기 미국식 경영학은 그들의 문화와 역사의 영향으로 실용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미국의 경영학자들은 명확한 개념정의나 연구대상의 규정에 관하여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현실적인 기업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즉, 실제 기업의 운영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관리자의 기능(function)이 무엇인가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이유로 처음부터 미국에서는 ‘경영’에 대응하는 용어가 없었다. 미국에서 매니지먼트는 관리자의 기능, 관리 기능을 사용하는 사람, 그리고 학과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미국의 경영학이 관리를 주요 경영대상으로 삼게 된 것은 미국 경영학자들(그리고 기업가들)의 경영철학이 기업 내부지향적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적 관리의 테일러(F. Talyor), 인간관계론의 메이요(E. Mayo), 관리과정론의 페욜(H. Fayol)과 쿤츠(H. D. Koontz), 행동과학론의 버나드(C. I. Barnard) 등 대표적인 학자들은 기업 내부의 관리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다. 미국의 경영에 대한 정의를 보면 이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미국의 경영학자인 폴렛(M. P Follett)과 쿤츠는 경영이란 ‘사람들을 통해 일들이 수행되도록 하는 기술’(the art of getting things done through people)이라고 정의 내렸다. 국내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페욜의 정의에 따르면 경영은 ‘개인들이 조직 구성원으로서 협력하여 주어진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경영자가 수행해야할 제 기능의 연속적 과정 – 관리의 다섯 가지 기능을 말하는데, 즉 계획, 조직, 명령, 조정, 통제 – 이다.

미국이 관리 중심의 경영학이라면 독일은 조직 중심의 경영학을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영학자들이 인정하듯이 독일은 미국에 앞서 가장 먼저 경영 개념을 연구하고 정리한 나라이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망이후 독일식 경영학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경영에 대응하는 적절한 용어가 없었던 미국식 경영학에 반해 독일은 경영을 의미하는 ‘Betrieb’와 경영관리를 뜻하는 ’Betriebs-verwaltung’을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독일식 경영학에서는 경영을 크게 ‘행동개념’과 ‘조직개념’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조직개념’의 관점에서 경영은 ‘수익성이나 생산성과 같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동하는 조직구성체’로 정의된다. 폭넓지만 엉성한 정의를 보여준다. 하지만 조직 개념의 관점은 경영을 다시 기술단위설, 경제조직설, 생산경제설 등의 세 가지 학설로 나눠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주제의 범위를 벗어남으로 생략한다.

‘행동개념’으로서 경영은 ‘기업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의 사업을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경영의 구체적 기능은 실질적 기능(연구개발, 생산, 판매 등), 명목적 기능(재무), 형식적 기능(관리)으로 나뉜다. 미국과 달리 ‘관리’를 ‘재무’나 ‘생산’과 같이 하나의 기능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경영을 행동개념의 관점에서 해석한 대표적인 학자는 베버(Max Weber)와 쉬미트(Fretz Schmidt)였다.

독일식 경영학은 미국식에 비해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경영을 바라보며, 관리뿐만 아니라 다른 기능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독일의 초기 경영학은 현재의 경영과는 매우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경영은 미국으로 대표된다. 1980년대부터 품질관리와 개선문화 등 일본식 경영이 각광을 받은 적이 있지만 1990년대 미국의 화려한 부활과 함께 일본은 뒷걸음질치게 된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미국에 있어서 기업과 경영의 발전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관리를 강조하는 미국의 내부지향적 경영은 위기를 겪게 된다. 실제로 미국은 1970년대 초기까지 전세계적으로 카메라, 복사기, 라디오, 자동차 등 주요 제품 시장에서 80%를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점유율은 급속히 낮아져 85년에는 20%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20세기 중반까지 관리 중심의 경영은 나름대로의 강점을 발휘했다. 관리를 잘하는 것이 경영을 잘하는 것이었고 효율적인 관리는 기업의 전체최적(total optimum)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시장과 기술 등 경제 환경이 지각변동을 일으키면서 효율적인 관리는 효과적인 경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단기 그리고 부분 최적(short-term & partial optimum)에 불과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기업과 학자들은 점차 경영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다시 말해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존의 관리와 내부중심의 경영에서 벗어나 기업 전체와 외부환경을 포괄할 수 있는 통합적 경영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그 출발점이 바로 전략(strategy)이다. 경영은 관리 이상이 됐다. 관리자 중심의 단기적이고 계획적이며 부분적인 경영에서 내부환경과 함께 외부환경을 중요시하는 장기적 통합적 경영으로 거듭난 것이다.

1990년대의 시작과 함께 다시 한번 경영(경영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게 된다. 20세기 말 경제 환경의 키워드는 ‘불확실성’이었다. 환경의 변화 속도와 폭이 계획과 예측의 사각지대로 치달음에 따라 기업 경영은 전략 이상의 것을 요구받게 된다. 사실 불확실성은 1980년대부터 잠재해있던 복병이었다. 기업과 경영학자들은 더 이상 기존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더 새로운 그 무엇이 필요했던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은 바로 리엔지리어닝으로 대변되는 경영혁신이었다. 점차 경영의 권위자들과 세계 유수의 컨설팅사의 입에서 리더십(혹은 기업가 정신), 변화(혹은 혁신), 정보기술(혹은 인터넷), 지식(혹은 무형자산), 브랜드(혹은 고객관계관리)와 같이 보다 소프트한 것들이 치약 짜내듯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그 유명한 페욜의 경영에 대한 정의는 노교수의 경영학원론 강의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이제 더 이상 경영학(이론)이 경영(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비웃는다. 어떤 사람은 미친시대는 미친경영을 요구한다며 기존의 경영(그리고 경영학)을 쓰레기 취급한다. 좀더 나이든 어떤 사람은 이제 경영은 유일한 하나의 정의만을 갖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제 어쩌면 경영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모습 – 재포장된 모습일까? 아니면 미친 모습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이어트한 모습일까? – 일지 아직 어떤 사람도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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