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민 뱅크-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4]

반대로 하면서 성공하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독창적인 은행 방식을 생각하셨죠? 원래 은행가도 아니잖습니까, 어떻게 하신 거죠?”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은행들이 어떻게 하나 보면서, 정반대로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정반대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일반 은행들은 보증과 담보를 요구하고,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상환 능력이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온 신경을 쏟는다. 그리고 행여 돈을 갚지 못하면 채무자는 도망 다니거나 죄인이 되어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라민 은행은 원금을 돌려받기 위해 법에 호소하거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없다. 이 은행은 ‘우리는 모든 일을 우리 스스로 해결 한다’는 원칙을 정했고 이것을 지킨다.

유누스와 직원들은 그라민 은행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법에 기댈 경우,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회원들과의 신뢰는 날아가버린다. 이런 이유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 사이에 사법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서류도 필요하지 않다. 유누스는 “우리는 다만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뿐이며, 우리 은행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오로지 사람들과의 관계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은 악화되기 쉽기 때문에 법이나 서류로 묶는다고 상환비율을 높일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라민 은행은 ‘사람은 정직하다’는 전제조건에서 출발한다. 서로 신뢰함으로써 돕고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으면, 원금 상환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고 믿는다. 기존의 은행 시스템이 불신에 기초한다면 그라민 은행의 원칙은 신뢰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이러한 신념과 원칙은 98%가 넘는 원금 상환율로 보답 받고 있다.

둘째, 일반 은행들은 사람들을 은행으로 나오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라민 은행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믿었다. 가난한 여성은 문맹인 경우가 많고, 이들은 은행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담을 느낀다. 가난한 일상과 은행은 거리가 먼 것이다. 그라민 은행은 설립 때부터 은행이 사람들 쪽으로 간다는 원칙에서 출발했다. 조브라 마을의 주민들에게 유누스가 돈을 빌려준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라민 은행의 어떤 지점을 방문해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광경은 볼 수가 없다. 또한 은행의 직원들도 몇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직원들이 고객들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직원이 사무실에 있는 것은 그라민 은행의 내규에 어긋나는 일이다’라는 문구를 의무적으로 붙여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유누스는 직원들에게 “여러분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 때문이 아니라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때문에 봉급을 받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셋째, 일반 은행들은 융자를 주기 전에는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일단 융자를 주고 난 다음에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가 만기가 되고 원금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그제야 융자를 준 사람에게 또다시 관심을 쏟는다. 그라민 은행은 이와 반대로 한다. 일반 은행은 ‘돈’을 보고 ‘결과’를 관리하는데 집중하지만, 그라민 은행은 ‘사람’을 보고 ‘과정’을 관리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직원들은 매주, 매월 한 차례씩 융자를 준 사람들을 방문해서 재정 상태가 어떠한지, 융자한 돈을 본래 목적대로 쓰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이런 식으로 2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매주 대략 300만 가구를 방문하고 있다(맨 아래 첨부한 ‘그라민 은행 직원의 하루 일과’ 참조).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하마드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의 사람들은 그라민 은행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에서 언젠가는 ‘예전에 가난했던 사람들의 은행’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다. ‘가난 없는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 그라민 은행의 꿈이기 때문이다.

변화경영전문가인 구본형은 그라민 은행의 사례가 주는 시사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나 역시 100%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라민은행의 사례는 감동적이다. 방글라데시의 가난이 만들어낸 경영의 위대함이며, 경영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취할 수 있는지 지평을 넓혀놓은 것이다.

내가 이 사례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기업이 하는 것과 반대로 경영하면서 성공한 기업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조건과 환경에 따라 얼마나 많은 해결의 묘법을 가질 수 있는지를 배운다. 이것이 바로 실험정신이다. 그리고 성공이란 늘 어느 날의 실험이 우리의 기대에 딱 부합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공이 새로운 실험의 결과라는 것을 아는 것, 이 깨달음이 바로 성공한 자들이 터득한 지혜다.”


첨부: <그라민 은행 직원의 하루 일과>

– 6시: 기상하여 세수 및 아침
– 7시: 서류와 가방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지점으로 향한다.
– 7시 30분: 융자를 받은 40명의 사람들이 직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자기네가 직접 만든 대나무 간이 시설에 앉아서 직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서로 그룹을 지어 여덟 줄로 앉아 있는데, 각 그룹의 대표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그룹 구성원들의 통장을 모아서 가지고 있다. 미팅이 있기 전에 간단한 체조 시간을 갖는다. 직원은 각 그룹으로부터 상환금과 통장을 넘겨받는다.
– 9시 30분: 직원은 자전거를 타고 두 번째 미팅을 위해 다른 ‘센터’(그라민 은행에서는 그룹 몇 개를 묶어 센터라고 부른다)로 향한다. 주중에 그 직원은 열 개의 센터를 관리해야 한다. 그는 자기 책임 하에 있는 400명의 회원을 만나야 하며, 여러 명목으로 제공된 융자(일반 융자, 계절 융자, 주택 융자)에 대한 상황금과 회원들이 맡기는 예금을 받아야 한다. 직원은 두 번째로 들른 센터를 떠나기 전에 장부를 대조하다가 몇 타가가 남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세히 검토해 본 결과, 한 회원이 다음 주에 상환해야 할 금액을 미리 상환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 11시: 직원은 회원들을 방문하고 그들에게 조언을 한다. 이 방문을 통해 회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인데, 직원이 교육자로서의 재능을 구체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획이기도 하다.
– 12시: 지점으로 돌아온 직원은 여러 서류들을 정리하고 회계 장부에 기록을 한다. 지점장이 일단 일을 마치면 이 직원도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회계 검토를 철저하게 해서 단 1타카의 오차도 없도록 해야 한다.
– 13시 30분 ~ 14시: 점심 및 동료들과의 티타임
– 14시: 오전에 수금된 돈은 오후에 새로운 융자금으로 지급된다. 융자를 줄 때 직원들은 지점장을 보좌한다.
– 15시: 이 직원과 다른 동료들은 새로 지급된 융자에 관한 내용을 장부에 기록한다.
– 16시 30분: 차를 마시면서 동료들과 환담을 나눈다.
– 17시 ~ 18시 30분: 융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점을 방문하거나, 아동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 19시: 남아 있는 서류 정리를 마치고 하루 일과를 마감한다.


참고:

1)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Vers un monde sans pauvrete, 1997),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세상사람들의 책
2) 경향신문 : 김윤숙 기자, 2004년 3월 22일자 기사
– 기사 제목: ‘신나는 조합’ 강명순씨 ‘자활대출’
3) 코리아니티 경영, 구본형, 휴머니스트, 2005년 12월

엮인 글:
그라민 뱅크-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1]
그라민 뱅크-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2]
그라민 뱅크-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3]
그라민 뱅크-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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