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민 뱅크-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2]

빛나는 성과

1983년 10월에 설립된 그라민 은행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우선, 규모면에서 보면 이 은행은 2004년 기준으로 1,200개 지점에 2만 명이 넘는 직원과 37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대형은행으로 성장했다.

그라민 은행의 직원들은 매주 300만 가량의 사람들의 집을 방문한다. 매달 그라민 은행이 융자해주는 금액은 4,000만 달러를 넘으며, 같은 기간 거의 동일한 액수의 돈이 상환된다. 이제까지 그라민 은행이 융자해준 총 금액은 45억 달러를 넘는다. 그라민 은행의 융자 프로그램은 방글라데시를 넘어 58개국에 퍼져 나갔으며, 국내에도 2000년 6월 그라민 은행 한국지부가 ‘신나는 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설립 되었다.

그라민 은행의 원금 회수율은 98%를 넘는다. 돈을 빌려간 사람 100명 중 98명이 돈을 갚는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농업은행과 산업개발은행의 원금 회수율이 각각 30%와 1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라민 은행의 98%라는 회수율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라민 은행이 빈민층에만 융자를 해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더욱 빛나는 성과이다.

그라민 은행이 추구하는 목표는 ‘융자를 받은 회원들이 즉각적인 수익을 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와주고 그들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라민 은행은 융자를 받은 회원들이 비회원들에 비해 주택 보유율, 영아 사망률, 피임기구 사용, 위생 시설 확보 등 전반적인 삶의 질 면에서 어떠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알아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여러 언론과 그라민 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은행의 융자를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주거환경과 삶의 질에서 의미 있는 개선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그라민 은행이 제공하는 주택 융자를 통해 1997년까지 45만 가구가 자기 집을 갖게 되었고 15만 가구는 살고 있던 집을 보수할 수 있었다.

높은 원금 회수율과 융자를 통한 회원들의 삶의 질 개선은 이 은행이 이룩한 전체성과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 은행은 방글라데시의 수십만 가정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라민 은행이 외부에 의뢰하여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융자를 받은 사람의 3분의 1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3분의 1은 가난의 문턱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그라민 은행은 한 가정이 가난에서 벗어났는지를 판단하는 간단하고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 식구들이 비가 새지 않는 집에서 살고,
  • 집에 위생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 깨끗한 물을 쓸 수 있어야 하고,
  • 매주 300타카(8달러)를 상환할 수 있어야 하고,
  • 학령에 든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다녀야 하고,
  • 모든 식구가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하고,
  • 식구들이 정기적으로 의료검진을 받아야 한다.

융자를 받은 어느 가정이 돈을 잘 활용하여 수익을 늘리고 이 기준을 충족시킨다면 그 가정은 가난에서 벗어난 것이다. 다음은 그런 가정 가운데 한 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에라 베굼 여인은 1959년 생으로, 다카 주(州) 모노하르디 군(郡)에 있는 키라티 카파시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농사일을 하였는데, 딸자식 여섯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다가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어 그녀를 어느 장님에게 시집보냈다. 하에라 연인과 그녀의 남편은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았는데, 너무 간난해서 아이들 셋을 제대로 먹일 수 없었다. 어느 날 하에라가 남편에게 그라민 은행에서 융자를 얻으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남편은 그라민 은행이 이슬람을 말살할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라면서 은행과 거래를 하면 당장 이혼하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 몰래 이웃 마을로 가서, 그라민 은행 사람들이 은행의 규칙과 운영방식에 대해 알리는 설명회에 참석하였다.

하에라는 그룹을 지은 여자들이 처음으로 그라민 은행 규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물어 보는 구두시험을 치르는 동안 몹시 불안했다. “저는 일생동안 쓸모없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어요. 어릴 적에는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부모님께 재수가 없다는 소릴 들었어요. 부모님은 지참금이 한 푼도 없었거든요. 어머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살려 두지 말았어야 했다는 얘기를 늘 하셨어요. 전 감히 융자를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돈을 갚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함께 그룹을 지은 여인들이 아니었더라면, 하에라는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마침내 2,000타카(50달러)의 융자를 받았을 때,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와 같은 그룹의 여자들이 그 돈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키우고, 묘판을 사서 심으라고 권하였다. 그녀가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집으로 끌고 왔을 때, 이 사실을 안 남편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이혼을 하겠다던 말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로부터 일 년 후 하에라는 원금을 갚았고, 두 번째 융자를 얻어서 땅을 빌리고 거기에 바나나 나무 60그루를 심었다. 나머지 돈으로는 두 번째 송아지를 샀다. 지금 그녀는 은행에 저당이 잡혀 있긴 하지만 땅을 소유하고 있고 염소와 거위, 닭을 키우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요즘 하루에 세 끼를 모두 먹어요. 아이들이 배를 곯는 일도 없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도 먹는걸요. 저는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내고, 중 • 고등학교, 대학교에도 보내서 저처럼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키우고 싶어요. 제가 지금 그라민 은행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세요? 그라민 은행은 저에겐 어머니 같은 존재예요. 아니죠, 그 정도가 아니에요. 어머니 ‘같은’ 게 아니라 저희 어머니예요. 새로운 생명을 주었거든요.”


이윤만이 기업의 목표는 아니다

그라민 은행을 이끄는 원동력은 확고한 경영 철학과 독특한 운영 방식에 있다.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업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영리 단체에 가깝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라민 은행은 남다른 사명감과 책임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은행’이라는 역할로 보면 이 은행은 이윤을 추구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노력한다. 금융기관으로는 독특하게 그라민 은행은 사회적 책임과 이윤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의 정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그라민 은행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직원들의 동기 부여가 약하고 또 헌신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마침내는 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라민 은행이 민간 기업을 모델로 삼건 비영리 단체를 모델로 삼건 간에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 그라민 은행의 원동력이 영리 추구에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우리 그라민 은행도 수익을 창출하고, 비용을 충당하고 미래를 개척하고, 계속 발전하는 노력을 한시도 늦춘 적이 없다. 하지만 그라민 은행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융자를 받는 회원들이 즉각적인 수익을 내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회원 주주들의 장기적인 복지 향상에 있다. (……)

나는 그라민 은행 활동을 통해서 이윤 추구만이 자유주의의 유일한 원동력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거기에는 사회적 목표라는 참 가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점을 잊지 않고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적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면 이윤 추구만을 꾀하는 그 어떤 기업과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그라민 은행의 업적은 주주들에게 주어지는 배당금이란 잣대만으로 측정되어서는 곤란하며, 배당금의 액수가 어떠하든 간에 우리의 활동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몫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란 측면에서 볼 때 그라민 은행의 철학은 어디에 속하는가? 좌파? 우파? 중도파? 그라민 은행은 정부의 개입을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또한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창업을 권장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라민 은행은 우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라민 은행은 또한 사회적 목표를 성취하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면 가난을 퇴치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여성들로 하여금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남녀평등을 지향하고, 노년층의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꿈은 이 세상에서 가난과 사회보조금을 몰아내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기존의 제도권이나 이윤추구에 목표를 두고 있는 일반 기업들과 다르다.

그라민 은행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기업이나 사회 분야에 개입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국가의 역할은 기업들로 하여금 사회 분야에 적극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이런 점들로 볼 때 그라민 은행은 좌파에 속한다. 여러 모로 살펴볼 때, 그라민 은행은 정치적으로나 전통적 관점에서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기가 곤란하다.”


그라민 은행의 가치와 규율: 우리들의 결심 16가지

그라민 은행은 1978년부터 은행이 믿고 지향하는 가치와 직원들이 지켜야할 규율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그 때는 그라민 은행의 실험기로, 정식으로 은행이 설립되기도 전이었다. 초창기에는 지역 책임자들이 매년 회합 갖고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번째 해부터 회합의 범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각 센터를 맡고 있는 책임자들도 참여했다. 198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국 규모의 회합을 개최하였고 회합 중에 결정된 사항들을 문서화했다. 1982년 두 번째로 전국 규모의 회합에서 참석자들은 ‘우리들의 결심 10가지’를 정리하여 공표하였다. 이것은 1984년 조이데브푸르에서 갖은 회합에서 ‘우리들의 결심 16가지’로 수정되었다. 오늘날 그라민 은행의 모든 지점에서는 직원들이 ‘우리들의 결심 16가지’를 소리 높여 외치고, 찾아오는 사람마다 직원 스스로가 이 문안에 적힌 대로 임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을 한다. 1984년 이후 이 문안은 더 이상 수정되지 않았다. 수정하지 않는 대신에 그라민 은행의 사람들은 16가지 조항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들의 16가지 결심’에 대해 유누스는 “이 문안에 포함된 조항들은 그라민 은행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존재이유와 삶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들의 결심 16가지>

  1. 우리는 그라민 은행이 정한 네 가지 원칙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준수하고 실천한다. 이는 규율, 단합, 용기, 성실이다.
  2. 우리는 우리의 가족에게 번영을 가져다준다.
  3. 우리는 허름한 집에서 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집을 수리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새 집을 짓는다.
  4. 우리는 야채를 재배해서 먹고, 남는 것은 판매한다.
  5. 파종기에는 가능한 한 많은 씨앗을 뿌린다.
  6. 우리는 가능한 한 아이들을 적게 갖는다. 우리는 이 지출을 줄인다. 우리는 건강을 돌본다.
  7. 우리는 자녀를 교육시키고, 교육비용을 충당한다.
  8. 우리는 자녀들의 위생과 환경을 생각한다.
  9. 우리는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한다.
  10. 우리는 깨끗한 우물에서 길은 물을 마신다. 만일 물이 깨끗하지 않으면 끓여 마시거나 명반으로 소독한 후 마신다.
  11. 우리는 아들을 결혼시키며 지참금을 받지도 않으며, 딸을 결혼시키며 지참금을 주지도 않는다.
  12. 우리는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할 때는 저항한다.
  13. 우리는 더욱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집단 투자 비율을 늘려 나간다.
  14.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는다.
  15. 우리는 센터에서 규율이 깨진 것을 보면 이를 바로잡는다.
  16. 우리는 센터에서 신체를 단련한다. 우리는 모든 모임에 단체로 참가한다.

‘우리들의 결심 16가지’는 몇 가지 조항을 제외하고는 가난을 벗어나고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과 관련이 깊다. 겉만 보면 선진기업의 비전 선언서나 기업이념에 비해 매우 기본적이고 소박해 보인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의 경제적 상황과 문화를 고려하면, 그라민 은행이 선택한 16가지 결심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한 실용적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방글라데시에 대해 간단히 요약해보자. 노동인구의 3분의 2가 농민이고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농업이 차지하고 있지만, 높은 인구 증가율과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매년 식량 부족 현상을 겪는다. 국토의 대부분이 낮은 평지이기 때문에 우기에는 하천의 자연범람으로 국토의 5분의 2가 물에 잠긴다. 출생률은 1000명당 30명인데 비해 영아사망률은 1000명당 66명에 달한다. 1억 명이 넘는 인구 중 75%가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고, 시골 여성의 문맹율은 85%에 달한다. 여성 차별이 심하여 교육을 받는 여성은 극히 소수이다. 또한 부녀자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관습인 ‘푸르다’(Purdah: 여성의 격리, 은닉, 또는 사교적 관계를 갖지 않음)의 영향으로 여성들에게는 여러 종류의 제약이 따른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시집을 갈 경우 남자에게 지참금을 받쳐야 한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80%를 넘게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종교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이다. 역사적으로 독재와 내란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고 정당 간 대립이 극심하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실업률은 40%에 달한다.

‘우리들의 결심 16가지’는 은행의 직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라민 은행의 주주와 회원(고객)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라민 은행의 지배구조를 보면, 정부가 약 8%의 주식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은행의 회원들이 갖고 있다. 회원이 주주인 셈이다. 대부분의 주식을 회원들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라민 은행의 가치와 규율은 직원을 넘어 주주와 회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엮인 글:
그라민 뱅크-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1]
그라민 뱅크-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2]
그라민 뱅크-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3]
그라민 뱅크-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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