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책을 읽는다는 것

‘노마디즘’이란 책을 읽으며 오랜 만에 목이 뻑쩍지근해짐을 느낀다. 써내려가는 노트에 팔의 긴장이 더해지지만 머리 속의 긴장감만은 못하다. 나는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읽게 될 것임을 안다. 어쩌면 평생 그럴지도 모른다. 어려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들뢰즈와 가탈리라는 철학자와 그들의 책을 연구해온 전문가의 힘을 빌려보지만 그것 마저 버거움을 느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몇 십년을 연구한 사람도 그렇다니, 내게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머리에 쥐나게 한다고 해서 독서의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연결되지 않았던 것들이 연결될 때 느끼는 희열이며, 가끔은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가게끔 만드는 투철함으로 족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알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독서가 늘 즐겁다는 것은 어느 경지에 이른 것이다. 즐거운 독서 이전에 애쓰는 독서가 있다. 즐겁기 위해서는 즐거움의 대상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읽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즐거움은 따라 오지 못한다. 그래서 독서는 애쓰는 것이고 고치는 것이다. 책읽기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TV 보듯이 책을 볼 수는 없다. 시간 때우는 이상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문제 발생, 문제 인식,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그래서 성찰이 중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성찰이 함께가지 않는 것만큼 나쁜 독서가 없다. 성찰과 독서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불러들여 현재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재구성되고 지금의 나는 재인식된다. 그것이 고치는 것이다. ‘애쓰기’와 ‘수정하기’ 가 없는 삶과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고치고 애쓰는 것은 인간적인 것이다. 신은 그럴 필요가 없고 다른 동물은 이런 능력이 인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책을 읽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가질 수 있는 특권 중의 하나다.

책만 많이 읽는 바보는 되고 싶지 않다. 독서는 머리를 숨쉬게 하고 마음의 눈을 좀 더 활짝 열어준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어떤 사유나 개념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독서를 한 것이다. 난해하고 어려운 책은 이런 감각과 능력을 길러줄 수 있다. 그렇게 깊어지면 그것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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