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여행이 아니다

얼마 전에 존경하는 스승님과 함께 국내 중견기업(이하 ‘병정기업’. 가명임)을 대상으로 변화경영에 대한 워크샵(workshop)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나는 보조적인 역할이었기 때문에 워크샵의 전체적인 모습과 구체적인 모습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었다. 워크샵은 최고경영진과 중간관리자급을 대상으로 70명 내외의 인원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각기 다른 날에 진행되었다.

병정기업은 가족기업으로 창업자는 회장으로 이사회를 관장하고 아들이 최고경영자로 있었다. 이번 워크샵은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의지에 추진되었다. 최고경영자는 지금이 위기라고 생각하고 전면적인 변화를 원했다. 그는 이번 워크샵을 통해 중역과 관리자들에게 변화의 당위성을 설득시키고 자극을 주고 싶었다. 워크샵은 변화의 시발점이자 촉진제로써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두 그룹 중 첫 번째 그룹은(이하 Group 1)은 창업자의 아들인 최고경영자와 함께 팀장급과 중간관리자(차장과 과장)로 구성되었다. 두 번째 그룹(이하 Group 2)은 CEO를 제외한 대부분의 최고경영진(부사장, 전무, 상무)과 팀장급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한 그룹을 4개 팀으로 나누고 팀당 7명에서 8명되도록 조직했다.

Group 1을 대상으로 한 1차 워크샵은 활발한 참여와 토론으로 성공리에 마쳤다. 최고경영자는 관리자들의 의식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에 대해, 그리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에 만족했다. 중간관리자들은 대부분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주도하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 최고경영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핵심 요인이었다. 최고경영자는 워크샵 속의 모든 프로그램에 솔선수범으로 참여했다. 게임과 토론에 능동적으로 참여했고 다른 사람들의 솔직하지만 비판적인 어떤 의견에도 인상 한번 짓지 않고 경청했다. CEO라는 자신의 직급이 워크샵에 제약이 되지 않기 위해 무척 애 쓰는 것 같았다. 구성원들은 워크샵을 평가하는 피드백 노트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점수를 주었으며, 추가 의견을 적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공적이었던 1차 워크샵과 달리 2차 워크샵은 워크샵의 본래 목적 중 반도 달성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본래 목적을 기준으로 보면 실패한 워크샵이 되고 말았다.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변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사장을 포함한 최고경영진 때문이었다.

Group 2는 Group 1과 달리 참여자의 3분의 1이상이 중역진으로 구성되었다. 워크샵을 처음부터 준비한 한 하위관리자는 ‘일부러 최고경영자를 피해 온 것’이라고 귀뜸해주었다. 부사장은 애초에 이번 워크샵에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이번 자리는 오랜 만에 임원진과 관리자들이 모여 ‘으싸으싸 한번하는 화합의 장’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워크샵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최고경영자와 달리 부사장은 워크샵 속의 하나의 팀에 속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는 이 회사에서 30년 이상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고 회장의 최측근이었다. 그런 그에게 변화는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을 위해(아니, 솔직히 말해 통제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워크샵을 참관하는 입장이었다.

다른 중역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였다. 워크샵 내내 부사장과 중역들은 자기들 끼리 모여 식사했다, 그것도 변화를 외치는 워크샵에서! 이런 행동이 다른 구성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겠는가. 먹는 것은 상징적이다. 우리는 먹는 것에 민감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소개받으면 으레 ‘다음에 같이 식사 한번 하시지요’하고 청한다. 중역들이 각자 중간 관리자들과 섞여 식사를 한다고 해서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만 노는 것은 큰 역효과가 있다.

2차 워크샵에서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된다, 그것도 여러 번! 워크샵 초기에 한 관리자가 병정기업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발표가 끝나기도 전에 한 중역이 발표자의 말을 가로막고 반론과 압박성 발언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부사장까지 합세해서 발표자를 비난했다는 것이다. 1차 워크샵의 경우 이보다 훨씬 노골적인 비판이 공개적으로 여러 번 나왔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는 않았다. 발표자는 말을 더듬으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워크샵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거워지고 말았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발표자는 2차 워크샵에 참여한 구성원들 중 가장 직급이 낮은 관리자였다. 변화의 싹을 시작도 하기 전에 죽여 버린 셈이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중역은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일방적으로 격렬하게 표출된 감정은 감춰져있던 민감한 사실을 자극한다. 우리는 이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무기명으로 ‘병정기업이 변화해야만 하는 이유’를 적어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무려 60가지가 넘는 이유가 나왔다. 그 중에는 ‘창업자 친인척 배제의 어려움’(한번도 공개적으로는 논의된 적이 없는 요인이라고 함)과 같은 민감한 사안도 포함됐다. 우리는 60가지 요인 중 비슷한 것들을 모아 분류했다. 그리고 분류된 것들에 대해 투표를 실시했다. 이렇게 하면 조직구성원들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변화해야하는 이유 몇 가지를 도출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분명했다.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역진은 다시 한번 나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부사장은 우리에게 뭔가 관리자들이 착각하고 있으니, 자신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것이 폭발적인 토론을 유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부사장은 마이크를 들자마자 관리자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부사장은 현장직원들도 아니고 중간관리자급에서 이런 다수의 비판적인 의견이 제시된 것에 대해 당혹감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그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나조차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부사장은 말을 마치면서 또다시 코메디를 연출했다. “내가 이런 말한다고 기분 상하거나 겁먹지 말고 여러분이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세요. 우리에게는 ‘벽없는 대화’, ‘제로베이스(Zero-base)에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은 좋다. 그러나 누가 이 말을 믿겠는가!

그런 소리를 들은 관리자들만큼이나 우리도 힘이 빠졌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워크샵을 진행해야 했다. 우리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완곡하게 부사장의 말을 비판하고 참여자들을 격려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이번 워크샵의 주제가 ‘변화’였고 우리의 일은 변화할 수 있는 초기 여건의 조성을 돕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멈추지 않고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리가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중역진은 다시 한번 워크샵에 찬물을 끼얹었다.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도중에 부사장은 우리에게 이상한 요청을 해왔다. 참석자들에게 꼭 전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는 것이었다. 부사장과 중역 둘이 번갈아 마이크를 잡아가며 뜬금없이 ‘좋은 소식’을 전했다. 그것도 두개나! 중역들은 좋은 소식을 통해 ‘우리 회사는 아무 문제없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변화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는 메시지를 은연 중에 보내고 있었다. 이 자리가 무슨 ‘투자설명회’하는 곳인가, 아니면 연말 종무 파티를 하고 있는가? 변화가 목적인 워크샵에서 갑자기 좋은 소식을 자랑스럽게 밝히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사람들은 변화가 실패하는 결정적인 이유로 ‘저항’(Resistance)을 꼽는다. 하지만 나는 저항보다 더 큰 변화의 적은 ‘만족’(Satisfaction)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저항은 ‘만족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화경영전문가들은 ‘불만족’(dissatisfaction)을 변화모델의 핵심요소로 본다.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Leading Change)의 저자인 존 코터(Jhon Kotter)는 구성원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본사를 매각하고 중역 월급의 50%를 줄이고 중역 전용 식당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것들을 제거하는 등의 상징적이고 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손실을 내거나 방치하고 언론매체에 적극적으로 알리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럴 정도로 디스세티스펙션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병정의 경우는 아래도 내려갈수록 변화를 열망했지만 중역진이 이것을 막았다. 그들은 불만족스러운 것을 견디지 못했다. 개인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Cancer cures smoking'(암은 흡연을 치료한다.)이라는 말이 있다. 암에 걸려야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불만족스러운 상황(암)없는 변화(금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명쾌하게 표현한 말이다.

과거에 만족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이상 변화는 없다. 변화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수없이 많은데 왜 변화를 하겠는가. 절실하지 않으면 변할 수 없다. 변화는 여행이 아니다. 여행은 ‘돌아옴을 가정한 떠남’이기 때문이다. 가슴에 뭔가 사무치는 것이 없는 떠남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에 불과하다.

확신하건데, 병정기업은 변화하지 못할 것이다. 시작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몇 달 간의 정기회의와 잘 포장된 보고서 이상의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병정기업이 당장 망한다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꽤 오랜 시간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생존하는 이유는 병정기업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병정이 속한 업종의 특성 때문이다. 여기서 업종의 구체적인 부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업종에서는 쉽게 망하는 것이 쉽게 성공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병정은 완만한 발전이나 퇴보를 부정기적으로 거듭할 것이다. 발전할 때는 속한 업종이 호황일 때이고 퇴보할 때는 불황일 경우이다. 병정은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환경’이라는 외부의 손에 쥐어주고 조마조마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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