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티콘(Oticon)의 부활

덴마크의 보청기 제조업체인 오티콘(Oticon)은 승승장구를 거듭하다가 갑자기 실적 악화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허덕인 대표적인 기업이다. 수십 년 동안 오티콘은 생산량의 90%를 해외로 수출하며 세계 보청기 시장을 선도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들어 경쟁업체에서 귀속에 들어가는 소형 보청기를 최초로 출시했다.

이 제품은 오티콘의 귀걸이형 보청기에 비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사용하기 편리하고 외관상으로도 효과 만점인 귓속형 보청기는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당시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이 이 보청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기가 더해갔다. 하지만 오티콘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제품이 음질면에서 훨씬 우수하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기술에 맞서, 예전 방식에 더욱 매진했다. 고도로 공학적인 귀걸이형 보청기를 계속 생산하고 기존의 유통채널을 통해 판매했다. 하지만 오티콘이 기존 방식을 더욱 열심히 실천할수록 시장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결국, 오티콘은 전 세계 보청기 시장 점유율의 절반을 빼앗겼다.

1980년 대 말, 오티콘의 이사회는 신임 최고경영자(CEO)를 물색하기 위해 외부로 눈을 돌렸고 라스 콜린드를 최고경영자로 선임했다. 그는 덴마크에서 세 번째로 큰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고 국립과학연구소(National Science Research Laboratory)를 운영했으며 보이스카우트의 리더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는 일단 직원 수를 15% 감축하고 예산안 승인 권한을 기존의 78명에서 한 명(콜린드가 직접 수표 한  장 한 장에 모두 서명했다)으로 집중시킴으로써 오티콘의 출혈을 멎게 했다. 오티콘을 파산 상태에서 구해낸 후, 콜린드는 경쟁 환경 조사 작업에 착수했다. 경쟁 환경은 열악했다. 오티콘은 재무 실적이 좋은 경쟁업체들에게 시장 점유율과 기술적 우위를 모두 빼앗긴 상태였다. 지멘스(Siemens)만 하더라도 오티콘의 연간 매출액보다 더 많은 자금을 보청기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비로 투자했다. 콜린드는 오티콘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쟁업체들 보다 더 혁신적이 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그는 신제품을 경쟁자들보다 시장에 더 빠르게 출시하고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콜린드는 오티콘의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조직 변화의 핵심 표적으로 선택했다. 사실 그는 신제품 개발 부분뿐만 아니라 구매, 영업, 관리 프로세스도 프로젝트 중심 체제로 바꿀 계획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역점을 둔 프로세스는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였다. 당시 오티콘은 기능별로 조직되어 있었다. 연구개발 부서에서 정교한 디자인을 제조 부서로 넘겨주면, 제조 부서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완제품을 만든 후 영업 부서로 넘기는 식이었다. 콜린드는 이러한 프로세스를 변형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즉 여러 부서에 속하는 직원들이 하나의 팀을 구성해 신제품 개발에 착수하고 프로젝트 기간 동안 협력하며, 프로젝트가 끝난 후 해산하는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이 프로세스 하에서는 누구든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추진할 수 있었다. 단, 세 부분(경영 전문가, 자금 조달을 위한 최고경영진, 팀을 구성하는 직원들)의 지지를 얻어내야 했다. 세 집단 중 하나라도 지지를 철회할 경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콜린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라’는 제목을 단 사내 정관을 통해 자신의 비전과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변화에 착수했다. 하지만 다른 경영자들과 달리, 콜린드는 그것만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오티콘에 만연해 있는 관료주의에 ‘핵 폭탄을 떨어뜨리기로’ 결정했다. 그는 두 달에 걸쳐 직원들과 중간 경영자들에게 자신이 변화를 위한 노력에 100% 헌신하리란 점, 그리고 그들 또한 헌신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점을 설득시켰다. 결국 모든 직원들은 콜린드의 변화 작업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단, 이로 인해 입지가 약해진 중간 경영자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콜린드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경영자들 일부에게 변화 작업을 위한 과도기 계획을 수립해달라는 도움을 요청했으며, 나머지 경영자들에게는 회사를 떠날 것을 촉구했다.

그 후 콜린드가 보여준 과감한 조치들은, 그가 전심을 다해 조직의 변형 작업을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오티콘의 낡은 경목 가구를 ‘공개 경매’를 통해 판매한 후 그 수익금으로 바퀴 달린 책상, 의자, 캐비닛 등을 구입했다. 직원들이 팀을 옮길 때 책상과 파일들을 자유로이 옮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991년 8월, 콜린드는 덴마크 언론사들을 초청해 오티콘이 새로운 본사로 이전하는 장면을 TV로 중계하도록 했다. 널찍한 작업 공간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사무실이라고는 거의 없는, 버려져 있던 터보그(Tuborg) 맥주 공장으로 이전한 것이다. 콜린드는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우도록 함으로써, 전 직원들이 변화 작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지막으로, 콜린드는 자신의 개인 돈으로 오티콘 주식의 17%를 매입했다. ‘오티콘의 변신’이라는 ‘도박’에 스스로 ‘판돈’을 걸은 것이다.

새로운 프로세스는 1990년대 내내 오티콘에 상당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프로젝트 기반의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통해 오티콘은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내장된 보청기, 즉 청력 손실도에 따라 소리를 자동적으로 조절해주는 보청기를 출시할 수 있었다. 오티콘은 1996년 유럽 디자인상을 수상했고 시장 출시 기간을 50% 단축시켰다. 또한 1990년에서 1998년 사이에 매출액을 세 배로 증대시키며 보청기 시장의 기술적 리더로 재부상했다.

참고:  기업혁신의 법칙(Revival of the fittest, 2003), 도널드 N. 셜(Donald Norman Sull), 웅진닷컴, 204 – 20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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