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의 실수

보잉(Boeing)은 1950년대 후반 세계 최초로 상용 제트기를 생산하였다. 보잉은 그 후로 대부분의 항공기 제작 주문을 수주하며 급성장했다. 6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오랜 시간 항공 산업을 선도했다. 이런 보잉이 1997년 50년 만에 첫 손실을 기록했다. 손실을 낸 원인은 간단했다. 회사에 필요한 인력을 붙잡아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990년 대 중반 아시아와 중남미 시장이 성장하고 미국 국내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항공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보잉의 경우 1996년 754대의 항공기 제작 주문을 받았는데, 1990년대 들어 가장 많은 주문이었다. 754대는 1994년의 124대에 비하면 무려 6배가 넘는 수치였다. 보잉은 다시 한 번 도약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듯 보였다. 그런데 이 좋은 상황에서 보잉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보잉은 1990년대 초반 경기침체로 인해 직원들을 대규모로 해고했다. 당시 보잉은 명예퇴직 대상자 1만 3,000명을 대상으로 퇴직신청을 받았는데, 이 중 9천 명이 퇴직을 신청했다. 이 수치는 보잉이 예상했던 인원의 두 배나 되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퇴직자들 중에 항공기 제작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숙련 기술자들과 유능한 간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보잉은 유능한 직원들을 붙잡아야 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매출과 수익 감소에 시달리던 보잉은 유능한 인력을 내보내는 결정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결정은 도약하려는 보잉의 발목을 잡았고, 경쟁사인 에어버스(Airbus Industries)에게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보잉이 명예퇴직 형식으로 유능한 인력을 내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세계적으로 해외여행이 급격히 증가하고 미국 시장이 살아나면서 항공 시장은 최고의 호황기를 맞이했다. 보잉은 1996년 여러 항공사로부터 기록적인 항공기 제작 주문을 수주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항공기를 생산할 인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당시 보잉은 주문량을 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보잉은 6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경쟁자인 에어버스의 성장을 막기 위해 고객들에게 무리한 항공기 생산인도 약속을 남발했다.

생산인력 부족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보잉은 18개월에 걸쳐서 3만2천 명의 인력을 새로 고용했다. 그러나 신입사원들은 숙련 노동자들의 기술수준을 신속하게 따라잡을 수 없었다. 무리한 주문 수주가 무리한 인력충원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예정된 인도일을 지키기 위해 늘 쫓기면서 생산을 해야 했고, 경험 없는 노동자들의 실수는 계속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품의 부족으로 1997년 10월에는 747과 737 기종의 조립라인이 한 달 동안 문을 닫는 일까지 벌어졌다.

1997년 보잉은 320대의 비행기를 고객에게 인도했는데, 이는 1996년에 비해 50%나 증가한 수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 수치가 인도해야할 목표치에는 한참 미달한다는 것이었다. 1998년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1998년 초, 보잉은 12대의 737NG 기종을 항공사에 인도했는데, 이 수치는 목표량의 3분 1에 불과한 수치였다. 생산이 지연되자 선적이 늦어지게 되었고, 이것은 고객의 문제로 이어졌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경우, 보잉에 주문한 비행기들이 인도되지 않아 다른 도시로 취항하려던 계획을 취소해야 했다. 고객이 입은 피해는 보잉에게로 되돌아 왔다. 보잉은 사우스웨스트 항공에 인도지연에 따른 보상비로 수백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보잉이 인도 약속을 어기는 일이 빈번해지자, 기존의 고객들은 에어버스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경쟁자인 에어버스의 성장을 막기 위해 무리하게 주문을 받았던 보잉이 오히려 에어버스를 도와주는 꼴이 됐다. 결국, 1997년 보잉은 최대 규모의 매출을 달성하고도 손실을 내고 말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보잉이 ‘적합한 인력의 부족’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적자를 본 것은 아니었다. 보잉이 적자를 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업 인수와 관련이 있다. 1997년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를 인수했는데, 특히 ‘상용기 사업부’ 인수비용으로 14억 달러가 들어갔다. 그러나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만약 보잉이 고객들로부터 수주한 항공기를 정상적으로 인도했다면 적자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인력을 보유하지 못한데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핵심은 ‘무해고 원칙’이 아니다. 어떤 기업이든 다양한 이유로 해고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고를 하더라도 유능한 인재를 놓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유능한 인재의 이탈은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성과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피말리는 마케팅 전쟁 이야기(Marketing Mistakes and Successes, 2004), 로버트 F. 하틀리(Robert F. Hart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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