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

하나. 일본과 미국 학생들에게 물고기가 중앙에 등장하는 물속 장면 애니메이션을 20초가량 보여주었다. 양쪽 모두 중앙의 물고기를 비슷하게 기억했지만 물풀이나 개구리, 우렁이 등 배경 요소에 대해서는 일본 학생들이 미국 학생보다 60% 이상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둘. 다른 사람에게 차(茶, tea)를 청하는 상황에서 중국인은 ‘더 마실래(Drink more)?’라고 묻지만, 미국 사람은 ‘차 더 할래(More tea)?’라고 묻는다. 중국인들의 관점에서는 그 상황에서 마시고 있는 것은 분명 ‘차’이기 때문에, 명사인 ‘차’를 문장 안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지만, 미국인들은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동사인 ‘drink’를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동양은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서양은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

셋. 중국 학생과 미국 학생에게 사람들 사이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상황을 분석토록 했다. 중국 학생들은 72%가 문제의 원인을 쌍방에서 찾으려는 양비론적인 의견을 내거나 대립하는 견해를 절충하려고 노력한데 반해, 미국 학생들은 26%만이 그런 식으로 문제를 분석했다. 서양은 양자택일(Either/Or)을, 동양은 종합과 융화(Both/And)를 지향한다. 나아가 서양은 논쟁을 중요하게 여기고 동양은 타협을 미덕으로 삼는다.

이상의 세 가지는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에 나오는 동양과 서양의 다른 점들 중 일부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루드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동서양의 노래’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오, 동양은 동양, 서양은 서양, 그 둘은 결코 만날 수 없으리
지상과 천상이 신의 거대한 재판정에 함께 설 때까지
그러니 동양도, 서양도, 경계도, 양육도 탄생도 없으리라
세상의 양 끝에서 온 두 거인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때!”

오늘날 동양과 서양은 매일 어디서나 만났다. 세계의 무역, 정보와 통신 기술, 정치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제 동양과 서양이 만나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나 키플링의 글처럼 동양과 서양 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지구 전체의 협력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이러한 차이점을 알아내고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는 ‘동양과 서양은 무엇이 얼마나 다르고 왜 다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그는 동서양의 비교라는 해묵은 과제를 다루지만, 그의 접근방법과 설명방식은 신선하다. 기존의 심리학 연구 성과를 인용하고 자신이 미시간대, 서울대, 베이징대, 교토대 등의 한국, 중국, 일본의 연구진과 진행한 실험 결과를 통해 동양이 서양이 어떤 부분에서 얼마나 다른지를 차근차근 알려 준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과학’이라는 절차와 틀로 밝혀 낸 그의 작업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동양과 서양의 비교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철학, 심리, 문화, 정치, 경영 등의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과 서양이 무엇에서 얼마나 왜 다른지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연구자의 문화적 편견, 그리고 획일화된 연구 방식 때문이다. 동양을 연구하는 서양의 학자도 서양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구자 자신도 나름의 전통적 사고방식과 문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여러 문화 출신의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연구하는 것이다. ‘생각의 지도’에 나오는 연구들의 대부분이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신뢰도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은 나와 남을 아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풍부하고 실증적인 연구결과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사고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그 대신 동서양 사이에서 실증적으로 발견되는 차이점들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동 · 서양 문화에 대한 상호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이 세 번째 견해가 ‘문화 차의 미래’에 대한 가장 타당한 견해라고 믿는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마치 요리의 재료들이 각각의 속성은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듯이, 두 문화는 새로운 통합을 맞이할 r서이다. 그 통합이 두 문화의 가장 좋은 특성만을 모아 놓은 걸작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아마 책을 읽으면서 ‘분량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생각의 지도’를 읽고 나서 느낀 아쉬움이 이것이었다. 저자인 리처드 니스벳의 심도 있는 연구 방식과 출중한 역량에 비해 7장(‘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 그 기원은?’)과 8장(‘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은 다소 미흡한 면이 없지 않다. 다른 장들에 비해 7장의 논리는 부족하고 주장은 약하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이해하고 배워 긍정적인 결합을 이뤄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앞으로 어떻게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담고 있는 8장의 메시지는 충분하지 않다.

이 책에는 풍부하고 실증적인 연구 결과들이 다수 소개되어 있지만, 일상적인 사례와 국제관계를 포함한 심화 사례가 좀 더 추가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미국과 이라크 간의 전쟁, 일본의 역사왜곡과 주변 국가의 영토에 대한 소유권 주장 등도 다뤄봄직하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이 책이 정기적으로 개정되어 새로운 버전으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이 책을 출발점으로 해서 동양과 서양의 여러 국가들이 공동 연구프로젝트 형식으로 보다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관점을 가진 연구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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