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치와 기대 관리

얼마 전에 친구에게 소개팅을 해주었다. 사실, 내가 한 것은 별로 없다. 그저 미팅할 사람의 휴대폰 번호를 친구에게 전해주었을 뿐이다. 그 이후는 둘이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최소한의 인연의 끈을 전해준 것이 내가 한 전부였다. 둘은 지금 연인관계의 문턱에 있다고 한다. 잘 된 것이고, 한편으로는 놀라운 일이다.

내 친구는 나에게서 미팅에 나올 그녀의 휴대폰 번호를 받았다. 사실, 나는 친구에게 연락처를 전하면서 내심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 녀석이 전화통화에 약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괜찮은데, 말이 느리고 어리버리하다. 하여튼 친구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고 어렵게 통화가 되었다. 친구는 늘 그렇듯이 답답하게 통화를 했고 그녀는 속으로 많이 답답했다고 한다. 통화에서 느낌이 별로였던 그녀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소개팅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으므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드디어 둘은 만났다.

기대 없이 나갔던 그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답답하고 어리버리할 것 같던 내 친구가 꽤 멋져 보이는 것이 아닌가. 깔끔한 정장, 하얀 피부, 착해 보이는 눈,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몸. 심지어 느려서 답답하게 들렸던 말투까지도 그녀에게는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내 친구가 마음에 들었고, 친구도 그녀가 괜찮아 보였다. 둘은 그렇게 연결됐다.

잠깐, 여기서 뒷이야기 한토막. 소개팅에 나가기 전,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정장을 입고 나가! 이거야, 이 정장 입어.” 나는 정장 하나를 직접 골라주기까지 했다. 밝은 정장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착한 친구는 내 충고를 따랐고 결과는 대성공.

이번에는 소개팅의 처음으로 돌아가 이렇게 한 번 가정해보자. 친구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목소리가 아주 좋고 말도 재치 있게 잘한다. 그녀는 친구가 마음에 쏙 들었다. 둘은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만날 날을 기다린다. 과연 만나서 처음 이야기처럼 이번에도 둘은 잘 될까?

추측해보건 데, 아마 첫 이야기처럼 바로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친구를 보는 순간 바로 호감을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친구에 대한 그녀의 기대’ 때문이다. 첫 이야기에서는 만남 전에 친구에 대한 그녀의 기대가 낮은 편이었다. 따라서 친구가 조그만 괜찮더라도 그녀는 기대 초과의 느낌을 갖게 되고, 이런 느낌은 호감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에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녀는 만나기 전에 이미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친구가 괜찮아 보이면 기대대로 된 것이고, 혹시 별로라고 생각되면 실망감은 급격히 커진다. 한 마디로, 기대가 크면 충족되기 어렵고 기대가 작으면 상대적으로 만족하기 쉽다.

이 이야기에서 ‘친구에 대해 그녀가 갖고 있는 기대의 정도’를 ‘기대치(expectation Index)’라고 하고, 이런 기대치를 의도적으로 통제하여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기대관리(expectation management)’라고 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나는 톰 크루즈라는 배우를 아주 좋아한다. 그가 나온 영화는 몇 번씩이나 봤다. 당연히 그의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히 높다. 그런데 그가 출연한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혹평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다보니, 나는 그 영화에 대해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영화를 보게 됐다. 그런데 정작 영화는 꽤 괜찮았다. 나는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그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대 이상이던 걸~!”

기대치와 기대관리는 보통 심리학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경영학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제품과 서비스(경험)에 대해 고객이 느끼는 기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고객의 기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고객의 만족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고객의 기대 이상이면 만족이 되고, 기대 이하가 되면 불만족으로 연결된다. 기대가 만족을 좌우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예를 들어 보자. 나는 훌륭한 경영을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기업들 중에 화장품 회사인 ‘보디샵’과 커피를 파는 ‘스타벅스’도 있다. 여러 번에 걸쳐 보디샵의 화장품을 구입하고, 약속이 있으면 스타벅스를 이용하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기대만큼 두 회사의 상품이 그렇게 탁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두 회사의 경영 방식과 철학을 신뢰하고 좋아하지만, 그들의 상품을 애용하지는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두 회사는 여전히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성장률도 업계 최상위에 속한다. 이것은 나와는 달리 많은 고객들이 두 회사의 상품에 만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객의 기대관리를 잘하는 기업으로 미국의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사가 있다. 사우스웨스트는 단거리 노선에만 취항하여 고객에게 최저운임을 제시하는 전략으로 성공한 회사이다. 운임이 얼마나 싼지 사우스웨스트가 취항을 하게 되면, 다른 항공사들은 백기를 흔들며 철수를 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사우스웨스트는 탁월한 고객 서비스로도 유명하다. 미국에서 고객 만족도 1위, 고객 불만 건수가 가장 적은 항공사가 바로 사우스웨스트이다. 뛰어난 고객 서비스 덕분에 사우스웨스트는 미국 항공사들 중 유일하게 30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성장해왔다.

일반적으로 싼 값은 질 낮은 서비스를 의미한다. 그런데 어째서 사우스웨스트는 고객을 만족시키고 고객으로부터 수많은 감사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그 이유는 가격을 훨씬 능가하는 서비스 때문이다. 사우스웨스트의 서비스 수준은 사실 탁월한 수준이 아니다. 이 회사는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기내에서 다른 항공사들처럼 영화를 상영하지도 않으며, 마일리지 프로그램이 경쟁사에 비해 뛰어나지도 않고 기내 시설도 떨어지는 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우스웨스트의 운임이 최저가라는 것이다. 다른 회사에 비해 적어도 삼분의 일, 심지어 절반 가까이 싼 운임을 고객에게 제시한다. 사우스웨스트는 고품격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광고도 하지 않는다. 이 회사의 비행기를 탑승하는 사람들은 고객 서비스에 대해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어느 정도 낮은 서비스는 받아들일 준비가 심리적으로 되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우스웨스트는 고객의 기대를 능가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선, 정시안전운행을 약속하고 지킨다. 둘째로 ‘즐겁고 유쾌한’ 기내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통 항공사들의 서비스는 ‘예의바른’ 것인데, 사우스웨스트는 다양한 이벤트와 유머 넘치는 직원들을 통해 고객들에게 즐겁고 유쾌한 경험을 선사한다(사우스웨스트의 채용 기준에 유머감각이 상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우스웨스트는 고객에게 ‘업계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 대비 최고의 서비스’ 혹은 ‘고객 기대 대비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객의 기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인 방법은 업종과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몇 가지 원칙은 있다.

첫째, 약속은 적게 하고, 실제로는 그 이상을 제공하라. 사우스웨스트 처럼, 그리고 내 친구처럼 말이다.

둘째, 소수의 차별화 요인에 집중하라. 이것저것 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이 잘하는 것을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셋째, 작고 사소한 이벤트를 활용하라. 가장 이상적인 것은 고객 한 명 당 하나의 이벤트다. 사우스웨스트는 잘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벤트의 장점은 한 명에게 하는 쇼를 통해 여러 명이 웃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고객이 예상하지 못할 때 하면 효과는 더 커진다. 이벤트의 목적은 고객과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고객이 나의 친구가 되면 최상이다. 친구 관계에서는 내가 실수를 했다고 친구가 떠나는 경우는 드물다. 우정은 더 이상 기대관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벤트를 통해 친구가 되고 친구가 되어 서로의 기대를 공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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