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스

“재미있는 책이다. 역시, 주제가 어렵다고 해서 내용도 어렵지 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한 책이다. “

전문가 서평, 책 겉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놀라운 칭찬들, 출판사의 자화자찬인 미디어 서평 이 세 가지는 안타깝게도 일반인들이 책을 선정할 때 매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들이다. 한번 속은 독자들마저도 다시 이것들에 의존해 책을 선정하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아주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그러니까 전문가 서평과 많은 칭찬과 자화자찬을 그대로 증명해낸 책이 한 권있다. 바로 ‘보보스’다. 저자는 재미있고 재치있고 톡톡 튄다. 오죽하면 그의 문장력에 번역가마저 감탄에 감탄해 하지 않았겠는가!

이 책은 ‘비즈니스 서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회, 경제, 문화, 문학, 도시… 인간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부분을 넘나드는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의 통찰력과 그에 못지 않은 재치와 위트는 ‘보보스’ 최대의 강점이다. 하긴 그 자신도 ‘나는 보보스다!’하며 연신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보보'(bobo)는 1990년대 중반에 서서히 하지만 때로는 폭풍의 눈으로 탄생한 새로운 엘리트 계층이다. ‘보보’는 ‘결합과 조화의 명수’라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보보라는 이름 자체와 그 이름의 기원이 답이다. ‘보보’는 ‘부르주아와 보헤미안'(Bourgeois & Bohemians)를 합성한 신조어이다. 포장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용도 결합되고 조화되어 새로운 어떤 것으로 채워져 있다. 효율과 창의성, 보수와 진보, 야망과 자유, 규제와 저항과 같이 상반되는 것들을 결합하고 조화시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보보이고 그들의 가치와 문화이다. 보보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돈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기존의 관습과 전통을 거부하지만 그 속의 핵심을 축소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확장시키고 변화시킨다.

보보에게는 보헤미안적인 부분과 부루조아적인 부분이 상충을 이루지 않는다. 동전의 앞뒤도 아니다. 동양의 음양 문양처럼, 태극처럼 조화롭게 녹아 있다. 그래서 이제까지 수 많은 사회학자들이 간과해왔던 것 같다.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는 사회학자가 아니다.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새롭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을 사실로 보는 것이 때로는 너무 어렵다. ‘현대는 음모의 시대’, 이것이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보보’는 새로운 음모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새로운 예언이자 기회일 수 있다. ‘보보’는 ‘지식 사회’, 그리고 ‘지식 조직’의 첨병임에 틀림없다. 그들에게는 ‘자기 개발’,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개발이 최우선 순위다. 하기 싫은 일을 죽도록 하는 그래서 괴로운 이는 보보가 아니다.

보보는 그런 사람들을 싫어하고 답답해 한다. 빌 게이츠, 스콧 맥닐리, 마이클 델 같은 사람이 보보다. 청바지를 입고 자신있게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해서 열정을 가지고 흥미롭게 때로는 침을 튀기며 얘기하고 소년처럼 웃는 사람, 보보의 특성이다. 보보는 일을 취미처럼 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래서 보보는 전문가 층이고 엘리트 층이라 규정된다. 그들은 돈이 최선인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균형 잡힌 세계를 원한다. 돈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적절한 곳에 쓰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기부를 특별한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국내의 졸부들이 절대로 보보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보보와 같은 새로운 계층이 생겨날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한 조짐이 보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겉 모습도 그리고 속 내용도 보보와는 많이 틀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보보와 같을 것이다. 첫째,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엘리트층일 것이라는 점, 둘째, 그들에게는 지식이 무기일 것이라는 점이다. 지식사회에서는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즉 전문성을 가진 부류만이 부의 분배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 부류가 지식근로자나 신지식인 혹은 보보, 1인 기업가 등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그들은 한 가지 사명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이 시대 이 세계의 진보’이다.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치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윤리적인 진보를 이끌어내는 것이 새로운 엘리트들의 기본적인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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