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 백전백승? [3]

‘지피지기 백전백승’은 전략적으로 맞지 않다

사람들은 종종 ‘경영’을 ‘전쟁’으로 묘사한다. 그만큼 전쟁과 경영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아마 경영이 빌려온 전쟁 개념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손자의 손자병법과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lausewitz, Karl von)의 전쟁론(Vom Kriege)일 것이다. 특히, 손자병법은 현재까지도 단순한 형식과 간결한 표현 그리고 구체적인 지침으로 ‘전략론의 원형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다.

이미 우리는 위에서 손자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두 번째 의문을 풀어 볼 차례다. 과연 나를 알고 적을 알면 필승할 수 있을까?

전쟁은 매우 복잡하다. 전쟁의 규모에 따라 사전 준비와 계획에만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전쟁이다. 정확한 정보는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적응해야 한다. 말이 쉽지 환경은 그 범위를 규정하는 것조차가 무리일 정도로 복잡하다. 거기에 변화의 속도와 범위가 더해지면 예측은 고사하고 적응조차 운에 맡겨야 한다.

요즘 조직과 개인의 경영에 있어서 ‘단순함’이 하나의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단순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과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의 차이다. 전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한 분야에 정통하여 핵심을 이해할 수 있는 조직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핵심은 간결하고 명쾌한 법이지만 그것을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순함’은 어설픈 단순화가 아니라 핵심을 전제로 한 단순화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관해서는 다시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복잡한 것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구성요인을 알아야 한다. 경영전략에서는 이를 크게 외부환경과 내부환경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외부환경은 거시경제환경, 정부, 기술혁신, 자연환경, 사회적 환경 그리고 산업의 구조적 특성 등을 포함한다. 외부환경 분석의 대표적인 이론으로 Harvard 경영대학원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의 산업구조분석모형(Analyzing Industry Structure : Porter’s Five Forces Framework)을 들 수 있다.

기업의 내부환경은 내부 역량(핵심역량), 경영자원, 기업문화, 조직구조 등을 말한다. 내부환경을 분석하는 대표적인 도구로는 프리할라드(C. K. Prahalad)와 게리 하멜(Hamel, G.)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e), 마이클 포터의 밸류 체인(Value Chain) 등이 있다.

놀랍게도 2500년 전 손자는 현대 경영전략이 다루는 환경 분석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이를 오사칠계(五事七計)란 항목으로 정리하였다.

오사는 분석의 큰 틀로써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을 의미한다. 칠계는 분석의 기준으로써 군주의 정치력, 장군의 능력, 기상과 지형조건, 법과 제도, 무기, 훈련, 상과 벌(보상체제)을 말한다.

오사에서 도, 장, 법은 경영전략의 내부환경과 대응되고, 천과 지는 외부환경으로 볼 수 있다. 칠계는 아군과 적군에 대해 오사의 관점에서 서로를 비교 · 분석하여 승리 가능성을 예상하고 적절한 전략 수립을 돕는다.

나를 알고 적을 안다는 것은 나의 약점과 강점, 적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나 경영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천(기상 : 거시경제, 정부, 사회적 환경 등)과 지(지형 : 기술, 산업의 구조적 특성, 경쟁의 특성)도 승부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로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전략을 세워도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필승전략이 필패전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손자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知彼知己 百戰百勝이 아니라 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말한 것이다.

엮인 글:
지피지기 백전백승? [1]
지피지기 백전백승? [2]
지피지기 백전백승?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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