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reative Marketing

지금 책장 한 구석에는 내 어린 시절을 가득 담아 둔 낡은 사진첩이 몇 권 있다. 그 사진들을 찍어낸 수십 년 된 일제 카메라는 이제 수명을 다하고 아스라한 추억의 체취만을 간간히 뿜어내고 있다. 내 아버지의 그 깊게 패인 주름에서 세월이 느껴지듯 그렇게 말이다.

작년쯤부터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그 오래된 골동품을 꺼내어 보기도 하고 사진을 배우기 위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뭔가를 남긴다는 것, 사람들을 관찰한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 그러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한데 어울리면서 아주 우연하게도 LOMO라는 사진기를 발견하게 됐다.


전설과 신화를 보다

내가 LOMO를 알기 오래 전부터 상당히 많은 젊은이들이 LOMO(정확한 제품명은 LOMO LC-A이다)를 알고 있었다. 이미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하나의 신화가 되어 있던, 이 작고 볼품 것 없는 사진기는 때로는 마법 상자처럼 때로는 오래된 친구처럼 많은 사람들의 영혼과 감성을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舊소련 시절 처음 만들어진 LOMO는 상품과 서비스 마케팅으로 먹고 사람들에게는 상품 가치가 전혀 없는 골동품으로 보일 뿐이다. 상품 유통에 잔뼈가 굵으신 분께서 내 LOMO를 보고 내뱉은 첫 마디가 “신문 구독 신청할 때 하나씩 끼워주면 딱 좋겠네!”였으니 말이다.

20만원 대 중반이라는 무시 못할 가격에, 목측식이며, 찍힐 사진을 예측할 수 없고, 사진기가 갖추어야 될 기본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 검고 무거운 기계가 어떻게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었을까? 디지털 카메라가 필수품이 되어 버린 젊은이들에게 기계식 LOMO는 어떤 의미였을까?


과거와 현재, 그 부조화의 아름다움

과거와 현재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둘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둘이 아닌 하나이다. 아버지와 자식이다. 얼핏 디지털 카메라와 LOMO를 동시에 들고 있는 Digital Kids의 모습이 아이러니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과거와 현재 속에서 동질적 가치와 감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태어난 LOMO가 현재에 존재하는 젊은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 부조화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은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또 다른 부조화의 아름다움들이 있다. 그 아름다움들이 LOMO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Digital은 Computing의 세계이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고 모든 것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과 기술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렇게 감정이 끼어들 틈 없는 숨막힐 듯 팍팍한 세상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젊은이들이 느끼는 답답함이란 기성 세대들의 그것보다 더욱 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LOMO는 자유를 준다. LOMO는 Digital이 아니다. Digital Camera가 그렇듯 LCD로 보여지는 세상이 그대로 사진이 되는 것이 아니다. View Finder가 있지만 보이는 그대로가 찍히지 않는다. 때로는 과장되게, 때로는 왜곡되게, 때로는 개성 넘치게 아날로그적 감성이 그대로 묻어난 사진이 찍혀 나온다.

누구나 미래를 예측하려고 애쓰는 시대에 ‘불확실성’이라는 조금은 삐딱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LOMO의 특색은 그 자체가 마케팅 구호가 되어 버렸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질병과 같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문화적 감수성을 공유하는,

Digital 기술이 안겨준 악덕 중 하나는 우리 개개인을 Digital Device로 둘러 싸인 작은 공간 안에 가두어 버렸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먼지 날리는 운동장을 뛰려 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자연과 사회와 멀어진 체 가상공간 속에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안주해 버렸다.

그러나 LOMO는 디지털 세대들에게 어떻게 아날로그 세상을 보고 즐겨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LOMO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고, 곧 세상으로 뛰쳐나와 살과 살을 맞대며 자연과 사람과 세상을 즐기기 시작했다.

폐쇄적인 공간에 머물러 있던 21세기 젊은이들이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보는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며 일종의 LOMO 문화를 창출해 냈고, 그것에 매혹된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늘었다. LOMO를 알리기 위한 어떠한 매체 광고도 없었고, 마케팅 비용도 소요되지 않았지만 세상은 LOMO를 알기 시작했다.


문화 창조, 마케팅의 궁극적 지향점을 보다

LOMO의 성공을 단적으로 규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핵심을 꼽는다면 LOMO는 현대 젊은이들의 감성을 간파했고, 이를 통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의 문화 창조 마케팅(Culture Creative Marketing)을 행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시장에 내 놓을 물건이 언제나 나와 경쟁하는 사람의 것보다 낫기를 바란다. 그래야 일이 수월하고 경쟁자를 압도하기 쉽게 때문이다. 상품 가치가 없는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상상하기 힘든 만큼의 에너지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LOMO를 알기 전까지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LOMO를 알고 난 후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됐다. 완벽하지 않은 상품이라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가치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문화를 만들어내는 마케팅이야 말로 그 궁극적 지향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케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마케팅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LOMO의 자취와 흔적을 따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LOMO만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또한 모호하기만 한 저자의 글이 명쾌하게 밝히지 못한 LOMO만의 성공 비결을 찾아 내는 재미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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