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샘! 우리는 할 수 있어요

올해 1월 미국 소매 유통업계의 역사를 만들어온 K마트가 파산했다. 월마트와의 치열한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됐고, 엔론 파산의 여파로 인해 자금조달이 어려워져 현금 유동성이 크게 나빠진 것이 원인이 됐다.

결국 100년간 쌓아온 역사를 한순간에 마감하며 K마트는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됐다. 반면에 K마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월마트는 눈부신 업적을 만들어 냈다. 설립된 지 불과 40년 만에 매출액 기준 세계 최고 기업의 자리에 오르며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월마트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운 존재’로 여겼던 K마트를 물리치고 최고의 기업이 된데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다. K마트뿐이 아니다. 세계 속의 수많은 기업들을 제치고 정상에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데에는 월마트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듯하다. 과연 무엇일까?


지오다노, 유니클로 그리고 월마트

94년 우리 나라에 홍콩의 라이선스 의류 브랜드인 지오다노가 첫 선을 보였다. 첫해 매출액은 20억 원으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해 100억 원 대의 매출을 올리며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더니 올해는 예상 매출이 2,500억 원에 달하는 경이적인 성장을 이루어 내 많은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의류 업계의 신화를 이루어 냈다는 평가를 얻으며 수많은 모방 브랜드를 탄생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매출액 규모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지오다노는 ‘저렴함’을 무기로 하는 의류 브랜드이다. 1만원대의 티셔츠와 4만원 내외의 바지, 셔츠 등이 주력 상품인 중저가 브랜드인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계산으로도 어마어마한 수치의 제품이 팔려 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싸다고 해서 잘 팔리는 것이 아니다. 제품의 질이 좋지 않다면 소비자들에게 쉽게 외면당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의류 브랜드의 베스트셀러인 지오다노의 성공은 싼 가격과 좋은 품질이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지오다노는 한결 같이 추구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바로 ‘백화점 품질의 의류를 값싸게 제공하는 것’이다. 싸지만 좋은 품질의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충실했던 것이 가장 큰 성공 요인이었다.

비단 우리뿐이 아니다. 일본의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는 뛰어난 품질의 옷을 저렴하게 공급하며 ‘유니클로 열풍’을 일으키고 ‘유니클로 현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추구한다

가끔씩 사람들은 특별한 것을 원할 때가 있다. 명품 브랜드를 하나씩 갖고 싶어하는 욕구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갖가지 아이스크림 중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가장 선호하고 즐기는 것처럼, 사람들은 가장 기본적인 소비의 가치인 ‘저렴함’과 ‘좋은 품질’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오다노
와 유니크로가 지속적인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갑자기 월마트와 상관 없는 지오다노와 유니크로 이야기가 나와 의아하겠지만 월마트의 성공도 이들과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바로 월마트의 핵심 경쟁 우위가 우수한 품질과 저렴한 가격에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싼 값에 좋은 품질의 물건을 공급하겠다는 그들의 ‘Everyday low price’전략은 이러한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준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른 상점에 더 싼 물건이 있다면 그 차액을 보상하는’ 방법 역시 월마트로부터 유래했으니 가격에 대한 자신감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은 월마트의 기업 이념처럼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선택을 제공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생활 필수품을 주로 취급하고 있는 월마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지오다노와 유니크로가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다양한 제품을 공급하여 사람들을 끌어모은 것처럼 월마트도 같은 방식으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었다.

때때로 특별한 것을 갖고 싶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은 현실이고 그 현실을 지탱하는 것은 지오다오와 유니크로 그리고 월마트라는 점에서 셋은 많이 닮아 있다.


싸게 파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저렴한 가격’에‘좋은 품질’은 소비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이지만 언제나 그렇듯‘기본’은 쉽지 않다. 화려한 마케팅과 경영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편에 속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저와 최고의 가치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사라져간 기업들의 예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언급했던 K마트가 가장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K마트는 월마트와 경쟁하기 위해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여야 했다. 마치 첩보전을 벌이듯 서로 각 물품의 가격 정보를 확인해 보고하는 정보원들을 파견했고 어느 한쪽이 물건 값을 내리면 다른 쪽도 같이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서는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아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공급자와의 교섭력과 기업 내부의 역량이 크게 작용하지만 공급자와의 협상에는 한계가 있다. 월마트가 영향력을 행사해 특정 회사를 보이콧한 사례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상황이고 대부분의 경우 제품의 가격은 기업 내부의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부적으로 탄탄한 성장을 거듭하던 월마트와 경쟁하기 위해 K마트는 가격을 내리는 데에만 바빴고 영업비용을 줄이는 것에는 실패했다. 결국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니 파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 월마트는 내려가는 가격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 영업비용 절감 노력에 충실했다. K마트의 매출액 대비 영업비의 비중이 22%가 넘었던 데 반해 월마트는 16%에 그쳤고 그 비중 또한 꾸준히 감소했다. 월마트 본사의 비용도 매출액의 2% 내에서 철저히 통제됐고 광고 홍보비에 대한 지출은 더욱 까다로웠다.

우리가 살펴 보았던 지오다노도 무턱대고 싼 가격에 물건을 판 것이 아니다. 통상 의류 업계는 한 품목의 총 생산량 중 50% 정도는 팔지 못했지만 지오다노는 이를 5% 이내로 줄이고 재고를 최소화해 획기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결국 비용 절감 노력이 회사와 고객 모두에게 이익을 나누어 준 셈이다.


원가절감을 위한 노력과 월마트 사람들

지금까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싸게 판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남지 않는 장사를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기업과 고객 모두가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어느 한 쪽이 손해를 입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손해는 다시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혜택을 얻었다면 회사도 필요한 것을 얻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소비자들에게 빼앗아 와서는 안 되며, 월마트가 한 것처럼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고객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월마트는 40년 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상시저가판매’전략을 유지하고 고객만족을 높이는 데 회사의 전력을 다했다. 따라서 무엇보다 원가를 절감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1970년대 물류센터를 거치지 않는 배송시스템인 크로스 도킹(cross-docking)은 그러한 필요성의 산물이었다.

크로스 도킹 시스템이 월마트가 경쟁자들을 누르고 원가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면 제품 공급 기간을 단축시키는 QR(Quick Response) 시스템은 월마트를 세계 최고의 유통기업에 올려 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물류 비용을 경쟁 기업의 3분의 1까지 낮출 수 있었고 오늘날의 월마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재고와 물류 비용 이외에 회사 운영에 따른 비용을 철저히 통제하고 줄여 나갔다. 본사 인원의 인건비를 포함한 총 비용은 총 매출액의 2% 이내에서 집행되도록 했으며, 광고비 또한 0.5% 이내에서 집행할 정도로 비용을 지출하는 데 인색했다.

반면에 비용 절감을 위한 투자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는다. 가장 효과적인 배송과 물류를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인공위성을 띄웠고 바코드 시스템, EDI, POS 시스템들을 기술 초기 단계에 도입하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했다.

단지 기술적인 발전뿐만이 아니다. 뛰어난 기술을 도입해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월마트는 창의적인 생각과 능동적인 업무 수행 능력을 중요시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하는 기업 문화를 키워왔다. 물건을 파는 것에 무슨 창의적 사고와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필요하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나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만으로는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없다.

월마트의 모든 직원들이 참여해 토론할 수 있는 ‘토요회의’와 원하면 누구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Open door policy’등은 월마트가 창고형 소매점 이상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월마트의 창업자인 샘 월튼이 녹음기와 메모장을 들고 평생을 전국의 매장을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월마트가 자랑하는 각종 커뮤니케이션제도들이 공허한 메아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월마트만의 것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자사의 핵심역량이자 기업의 이념인 ‘저렴한 가격에 가치있는 물건을 공급’하려는 노력을 한 순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쟁 기업인 K마트는 자사의 핵심역량이었던 ‘고품질 브랜드 상품’의 공급은 도외시한 채 비관련 부분으로의 사업 다각화와 무분별한 점포 확장으로 화를 자초하고 있었고, 업계 5위에까지 올랐던 Dillard’s 백화점은 월마트를 따라 가격경쟁에 나섰다가 경영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반면에 월마트는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이라는 핵심 이념을 고집스레 유지하며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K마트, Dillard’s, 시어즈 등의 경쟁 기업이 월마트와 같은 노력을 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바로 그 차이는 ‘월마트의 고집스러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경쟁기업들이 부동산, 금융, 스포츠 등 본래 사업 영역과 관련이 없는 부문에 뛰어들 때에도 월마트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가 있는 몇 곳에만 온 힘을 쏟았고 오직 싸게 파는 데에만 역량을 집중했다. 결국 최후의 승리는 월마트의 것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한 가지에만 집착하는 것이 바보스럽고 답답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들 곁을 스쳐간 수많은 기업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고집과 집착’이 결코 진부하거나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통의 경우 기업이 몰락의 길에 들어설 때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을 하게 된다. 이것은 핵심이념을 혼동하는 것에서 비롯되며 애초에 가지고 있던 굳은 신념을 잊어 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성공하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신념, 즉 핵심이념을 결코 잊는 법이 없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월마트의 성공은 우리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월마트의 초기 입지전략과 배송, 물류가 경영전략과 마케팅 학문의 발전에 기여한 점은 빼고라도, 기업의 핵심이념을 세우고 그것을 꾸준히 유지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Fortune이 500대 기업을 선정한 지난 20년간 가장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한 기업 중 하나가 바로 월마트라는 사실만 봐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기술을 배우고 전략을 모방하는 것은 쉽다. 서점에 가면 평생 동안 읽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돈이 있다면 컨설턴트를 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경영이념과 핵심이념을 만드는 것은 회사에 속한 자기 자신들이다. 결코 남에게 맡길 수 없고 남이 대신해 줄 수도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해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난관 속에서도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K마트가 두려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힘든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에도 핵심이념을 고수했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 기업이 월마트와 같이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있는지 알아 보고 싶다면 옆 동료에게 우리 기업의 핵심이념과 비전은 무엇인지 물어보아라. 대개 어느 정도 비슷하게 대답할 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약 정확하게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우리 회사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도 좋다.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이제 그것을 지켜나가는 일 만이 남았다.

출처: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사보 <세계의 기업>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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