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dism 그리고 Ford

흑백 화면 속은 온통 진흙투성이의 거친 길뿐이었다. 곳곳의 깊게 패인 웅덩이들 때문에 사람들은 걷기조차 힘들 정도여서 길이라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영사기의 빛을 가로지르며 T자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차 한대가 아슬아슬하게 그 거친 길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어떤 길도 빠르게 헤쳐나갈 수 있는 값싸고 튼튼한 차라는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며 작은 자동차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20여 년간 5,000만대라는 경이적인 판매 기록을 세운 포드의 T형 자동차가 흑백 영화의 광고 속에 그리고 역사 속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등장한 포드의 T형 자동차는 미국을 변화시키는 거센 폭풍과도 같았다. T형 자동차로 인해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그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했고, 포드는 설립된 지 불과 수년 만에 업계의 정상에 설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곧이어 미국인들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부 부유층들의 전유물이던 자동차가 서민들의 발 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다.

또 하나, 포드는 T형 자동차와 함께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경영학의 역사에 큰 업적들을 남기는 영예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포드는 T형 자동차와 함께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생산성 시대의 승자 Ford

포드가 설립된 1900년대 초 미국은 그야말로 자동차 산업의 춘추전국 시대였다. 무려 500개가 넘는 자동차 생산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포드도 그들과 다름없는 조그만 회사에 불과했다. 그렇게 수많은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지만 자동차를 팔 수 있는 시장은 크지 않았다.

그 당시 자동차는 값비싸고 사치스러운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작은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수 많은 기업들이 경쟁하는 상황이었기에 어느 회사도 제대로 된 수익을 낼 수가 없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사업을 그만 두거나 혹은 업계의 선두가 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포드의 선택은 분명했다. 많이 만들어서 싸게 파는 것. 포드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는 쉬운 곳에서 답을 찾았고, 기계 전문가답게 새롭고 획기적인 생산 시스템을 설계해 냈다. 이른바 Ford system이라 불리는 이동조립작업시스템(conveyor system)이 그것이었다.

결과는 역사에 기록되었듯 대성공이었다. 포드는 첫 번째 작품인 A형 자동차를 선두로 B, C 그리고 K형에 이르기까지 큰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고 T형 자동차에 이르러 그 성공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T형 자동차의 성공이 지속되며 포드는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대량 생산시스템에 의해 싸고 튼튼하며 실용적인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개인 승용차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포드는 T형 자동차의 신화가 계속되는 동안 자신들이 점차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Ford system에 의해 붕어빵이 찍히듯 검정색 T형 자동차가 찍혀나올수록 포드와 소비자 모두 지루함을 더해가고 있었다. 대량 생산시스템의 이점이었던 가격과 생산성의 매력이 줄어들자 판에 박힌 듯한 업무와 변함없는 검정색 모델에 모두들 진저리가 났던 것이다.


경쟁우위를 잃고

포드는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 가볍게 봤던 것 같다. 사람들은 언제나 필수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난 후에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에 반드시 미련을 두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포드 자동차를 구매했던 사람들도 똑같았다. 값비싼 자동차를 싼값에 살 수 있어 기뻤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오직 실용성만을 염두에 두고만들어진 포드 자동차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싸고 잘 달리는 자동차보다는 좀 더 예쁘고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자동차를 갖고 싶어했다. 하지만 포드는 그런 사람들의 욕구를 쉽게 충족시킬 수 없었다. 포드에 큰 성공을 가져다 준 Ford system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렬로 길게 늘어선 Conveyor 사이로 빽빽이 늘어선 사람들이 바쁘게 손놀림을 할수록 더 많은 자동차가 생산됐다. 다른 회사들은 자동차 한 대를 두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지만 포드의 노동자들은 그저 한 자리에서 자신의 일만 계속하면 됐다.

긴 벨트의 끝에 다다를 때면 자동차 한 대가 생산되는 놀라운 마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포드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싼 가격으로 차를 만드는 마술사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포드의 긴 벨트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낼 만큼 다재 다능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Ford system은 포드를 대량생산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다양성과 유연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경쟁우위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T형 자동차가 생산된 지 10여 년이 지나면서부터 포드는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했고, 1920년대 알프레드 슬론과 GM의 등장은 포드의 몰락을 재촉했다.

역설적이게도 포드 자신이 몰고왔던 자동차 산업 재편의 희생양이 됐던 것이다. 포드의 힘에 눌려 10여 개가 조금 넘는 자동차 회사들이 모였고 이렇게 이루어진 GM은 다양성과 유연성이라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더없이 훌륭했다. 포드의 역사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포드는 GM의 그늘에 가려 있어야만 했다. 헨리 포드가 이루었던 옛 명성을 다시 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포드의 경쟁자였던 GM은 거대 했으며 포드 신화 이후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솜씨 좋은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미국인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으며 포드와 GM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한 승자는 없다. 포드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포드는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Ford의 사람들

1980년대 말 우리나라는 극심한 노동분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89년 시작된 노동자들의 요구는 그 동안 쌓여왔던 불만과 불이익에 대한 보상 그 이상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즈음, 포드는 노동자들과의 신뢰 구축에 성공하며 그 이전에 있었던 노동자와 회사간의 갈등을 씻어가기 시작했다.

그 효과는 대단히 컸다. 노동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보상 시스템을 만들어 내면서 포드는 일약 최고의 성과를 내는 기업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1980년대 초 포드는 일본의 계속된 공세로 불과 3년 만에 자산의 43%에 달하는 순손실을 보아야 했다. 당장 눈 앞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효과 빠른 방법들이 동원되어야 했다.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경영상의 수치를 건전하게 바꿀 필요가 있었지만 포드는 오히려 느긋하게 대처했다.

마치 대학교 철학 강의 시간과 같은 회의가 계속됐고 이를 통해 사람(people)과 제품(product), 이익(profit)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포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이러한 인식은 곧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

미국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와의 계약은 가장 큰 변화이자 시도였다. 미국자동차노조는 포드와 GM, 크라이슬러에 노동자와의 이익공유제도(profit sharing)를 제안했다. 회사가 성과를 내는 만큼 노동자들에게 그 몫을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GM과 크라이슬러는 이러한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지만 Ford는 달랐다. 이미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Ford에게는 이익을 나누는 것은 아깝지도 않았고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노동자들과의 이익공유제도가 시행되자 회사 내부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성과를 높이는 일에 모두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볼트 하나를 아끼고 물을 절약하는 사소한 일까지 자신들의 일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

성과는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회사의 이익이 커진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것이 자신의 보상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회사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가장 거칠기로 유명한 미국자동차노조의 모습을 포드에서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노사관계가 안정됐고 자동차의 품질은 더불어 향상됐다. GM의 절반밖에 안 되는 몸집으로 비슷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고객의 신뢰를 얻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Fordism 그리고 Ford

이렇게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지킨 포드의 모습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 헨리 포드의 모습을 현재의 포드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어쩌면 포드가 그토록 오랫동안 GM의 그늘에 가려있었던 것은 헨리 포드의 유산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헨리 포드가 남겼던 사상이 뒤늦게 빛을 발하며 포드는 다시 한 번 신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과거 헨리 포드의 사상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낯설면서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창업자 포드는 기업을 개인의 사유물이 아닌 사회봉사기관(instrument of social service)으로 생각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임금과 저가격(high wage and low price)으로 표현되는 그의 경영이념, Fordism이다. 그는 Fordism을 통해 포드를 미국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다.

주급 3달러가 채 안 되는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 두 배가 넘는 5달러를 받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포드에서 일하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했고 포드는 뛰어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그 당시 만연해 있던 노동자들의 태만과 저항을 말끔히 씻어 내며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고 그 혜택은 노동자들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여기에서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찰리 채플린이 연기하던 우수꽝스럽지만 절망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적어도 포드의 노동자들만은 Ford system의 피해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역사를 쓰며

옛 포드의 몰락을 오로지 Ford system의 실패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헨리 포드의 완고함과 독단적 경영방식, 최고라는 자만심, 경영진들의 내부 분열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포드가 아니어도 실패하는 기업이라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Ford system은 하나의 상징이다. 경직되고 시대에 뒤쳐진 포드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인 것이다.

반면에 Fordism은 포드 성공의 상징이다. 포드의 부활에 노동자들과의 관계 개선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로지 그것만이 포드의 성공을 이끈 것은 아니다. 고객에 대한 배려, 통계적 품질 관리 시스템의 도입,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성공하는 기업의 모든 것을 현재의 포드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상징은 그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Ford system과 Fordism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포드 그 자체이고 역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Fordism은 그 의미가 더욱 크다. 1980년대까지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이겨내며 정상의 기업으로 다시 설 수 있었던 데에는 포드가 가지고 있던 오랜 가치를 기억해 내고 그것을 지키고자 했던 회사와 노동자들의 노력이 컸다.

그러한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 사이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돈독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관계에 헨리 포드의 경영이념이 고 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헨리 포드의 경영이념은 낡고 오래됐다. 하지만 그 가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으며 그것을 지키는 동안 포드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역사를 써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꽤 오랫동안 포드의 화려한 역사를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출처: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사보 <세계의 기업>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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