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셔닝: 마케팅 바이블

마케팅. 마케팅이라는 용어의 가장 적합한 우리말은 무엇일까? 시장화(市場化)가 적합할까? 한동안 한국마케팅학회는 마케팅이라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고심했지만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했다. 단 하나의 단어로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갖는 의미와 개념을 설명해 내기에는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마케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론인 포지셔닝(Positioning)은 어떤가? 자리잡기? 포지셔닝 역시 그 개념과 의미를 한 손에 휘어잡을 만한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 의미만큼이나 혼동을 주는 이름을 가진 포지셔닝. 나는 포지셔닝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했지만 부끄럽게도 그 개념의 깊이를 짐작하지 못했다. 자리잡기라고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컸다.

어느 날 혼잡한 길을 걷던 도중 독특한 판형의 책 한 권을 들고 가는 직장인을 보게 됐다. 하얀 겉표지에 데생에나 사용됨직한 두상이 그려진, 그리고 그 머리와 눈을 관통하며 연결된 화살표들이 그려진 책 표지. 뭔가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시선을 한 눈에 끈 그 책은 잭 트라우트와 알 리스가 공저한 POSITIONING이었다.

1972년 Advertising Age에 기고된 ‘The Positioning Era’라는 논문을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한 포지셔닝의 개념은 마케팅의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으며 80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 후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며 마케팅 전략 전반에 걸쳐 중대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고 새로운 브랜드의 성공을 이끄는 강력한 엔진이 되었다.

이론이 소개된 이후 우리는 제품 혹은 브랜드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적절한 Positioning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포지셔닝은 무슨 뜻일까? 저자들은 제품과 브랜드,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잠재적인 고객의 마인드에 ‘자리’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이것이 포지셔닝의 요체이다.

Coca Cola가 Pepsi에 우위를 점하고 Kodak, IBM, Xerox, GE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되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범주에서 가장 강력한 포지셔닝을 점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지셔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저 자신의 사업영역에서 최고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우위를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고객을 현혹시키는 달콤한 속삭임일까?

내가 미쳐 알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것에 있었다. 전략도 유혹도 아닌 ‘커뮤니케이션’, 포지셔닝은 고객과 기업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매체와 공존하며 그 결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고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한정돼 있고 기업이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는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정신나간 짓을 뿐이다.

상품과 브랜드 그것들이 가진 이미지를 고객의 머리 즉 마인드에 각인시키기 위한 효율적이면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포지셔닝인 것이다. 저자들은 처음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광고 부문에 한정해 이론을 전개했지만 현재는 기업과 브랜드를 넘어, 개인의 경력과 마케팅, 경영전략 전 분야에까지 그 힘을 넓혀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포지셔닝의 근원이라면 당연한 결과이다.

시대와 그 영역이 달라지면서 책의 내용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저자들은 20주년 기념판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을 수용하고 그간 새롭게 진행된 기업들의 변화를 수록해 두었다. 변화와 사례는 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무슨 무슨 바이블이라는 종류의 책들이 주는 엄숙함과 딱딱함과는 거리가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두 저자가 펼쳐 내는 직설적이면서 위트 넘치는 화술은 우리의 마음을 쏙 빼내갈 만큼 뛰어나다. 하지만 결코 넋을 놓아서는 안 된다. 책의 내용에 깔려있는 지나친 단정(斷定)과 확신이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변의 진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단호하지만 유연한 판단력과 사고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객과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업계의 최고가 되고 싶다면 그리고 이미 최고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유지하고 싶다면 ‘POSITIONING: The Battle for Your Mind’를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브랜드는 기업의 것이 아니어도 좋다. ‘나(我)’라는 존재도 브랜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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