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조직문화를 창조하는 기업 GE

‘타고난 독설과 신랄한 풍자로 인기 높은 CBS의 간판프로그램 Late Show의 레터맨이 GE 본사 건물을 찾았다. 건물에 들어가려 했으나 곧 저지당하고 한참을 문 앞을 서성이며 특유의 말솜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얼마 후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이 레터맨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었다. 고위층의 허락이 없어 건물에 들여보낼 수 없다는 설명을 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레터맨은 그 담당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순순히 물러나는 듯 했지만 손을 내밀려던 GE의 담당자는 이내 손을 뒷춤으로 거두고 말았다. 상부의 허락 없이는 악수조차 못하는 GE 담당자는 두고두고 입심 좋은 레터맨의 놀림거리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일은 곧 GE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GE의 모습은 어떠한가? 4,600억 달러의 기업가치, 1,300억 달러의 매출액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이라는 타이틀에서 앞서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GE는 가장 창의적인 지식기업의 대명사가 되어 있지 않은가. 지식을 창출하는 기업은 그 조직문화부터 다르다. 그들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적극적이며 생생한 생명력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GE 또한 다름이 없다.


쉽지만 어려운 기업문화

얼마 전 서점가에서는 비즈니스맨을 위한 동화들이 인기를 끌었다. 전혀 새로운 것 없는 내용에 빈약한 페이지수 하지만 그에 비하면 다소 비싼 듯한 책들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낡은 유행이 되고 말았다. 기업들마다 앞다투어 단체 주문을 했다는 그 책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낡은 서랍 속에 그리고 자동차 뒷좌석에 어지럽게 버려져 있지는 않을까?

그 동안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경영기법들을 찾아 헤맸고 그것을 빠른 시간 내에 조직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막대한 컨설팅 비용과 인력이 투입됐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뤘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마저 오래 지속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GE를 있게 한 워크아웃(Work-Out)과 식스시그마(Six-Sigma)도 우리 기업들의 모방 대상이었지만 GE만큼의 성과를 이끌어 낸 기업은 없었다.

비즈니스맨을 위한 동화는 이런 현실 속에서 일종의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익히기에도 벅찬 우리들에게 살아 있는 조직문화는 그 자체로 이상향이 되어 주었다. 게다가 단순하고 명확한 내용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많지 않은 듯 보이게 해 주었다. 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이 불과 100여 페이지 남짓한 책 한 권으로 해결되리라고 생각한 우리들의 잘못이 컸다. 그것은 무엇보다 고되고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GE와 잭 웰치가 그것을 위해 거의 모든 시간을 바쳐야만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는 듯하다.


Jack Welch 그리고 성공하는 기업

1999년 10월 GE의 전 회장 잭 웰치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례적으로 서울에서 공개 강연회가 열렸고, 화려한 언론의 주목에 보답하듯 강연회장에는 차가 다니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한국에서의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대기업 간부들부터 학계인사들까지 잭 웰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야 했다. 그는 무엇을 말했을까? 그리고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강연회에서 잭 웰치가 가장 강조한 것은 조직의 민주주의(Corporate Democracy)와 학습하는 조직(Learning Organization)이었다.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그것을 해결할 풍토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그들의 노력을 보상할 수 있는 훌륭한 보상 시스템(Reward System)과 급변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속도(Agility)가 더해진다면 잭 웰치가 생각하는 성공하는 기업의 모범답안이 된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워크아웃과 식스시그마에 녹아 있다. 하지만 워크아웃과 식스시그마를 실행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성공하는 기업이 될 수는 없다. 워크아웃과 식스시그마는 경영개선 기법이 아닌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맨을 위한 동화가 주는 교훈이 결코 쉽고 단순하지 않듯이 워크아웃과 식스시그마 또한 어렵고 복잡한 문화형성의 과정인 것이다.


Work-Out은 구조조정?

우리들에게 워크아웃은 흔히 구조조정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 의미는 매우 다르다. 워크아웃은 경영혁신의 도구인 동시에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도록 돕는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타운미팅(Town Meeting)은 바로 그런 워크아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이다.

GE는 조직 내에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생기면 타운미팅을 주최한다. 참석대상자에는 제한이 없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사람들이라면 부서와 직위를 막론하고 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회의실로 모여든다. 보통 2일에서 3일이 소요되는 타운미팅을 통해 참석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마음껏 제시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가게 된다.

이 과정은 잭 웰치가 제시한 조직의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직 내에서 개인을 구속하는 직위, 부서 등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강력히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타운미팅의 참석자들은 문제 해결이라는 성과를 얻기 위해 모인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기업의 주체가 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조직 내 민주주의(Corporate Democracy)의 실현을 통해 구성원간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물 수 있게 되었다.


Six-Sigma는 품질개선운동?

이렇게 GE의 내부를 겹겹이 감싸고 있던 장벽을 거둬준 워크아웃은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1989년 시작됐다. GE는 워크아웃을 통해 주변의 자그마한 일들을 쉽게 고치고 개선해 나갈 수 있었지만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에는 토론이 주를 이루는 워크아웃은 알맞지 못했다. GE는 곧 워크 아웃을 기초로 식스시그마라는 경영혁신 기법을 도입해 새로운 조직문화를 창조해 나가게 되었다.

식스시그마와 워크아웃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 모두는 개선을 위한 공동 작업이며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다. 차이가 있다면 워크아웃은 커뮤니케이션에 중점을 두고 있고 식스시그마는 그 성과를 수치적으로 측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데 있다. 불량률을 1백 만개당 3.4개의 수준으로 낮추고자 하는 것이 식스시그마인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이것이 아니다. 식스시그마는 단순한 품질개선운동이 아닌 것이다. 식스시그마는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의 오차를 줄이고 나아가 그 과정을 향상시켜 회사의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인 것이다. 우리의 많은 기업들은 불량률을 낮추기 위해 식스시그마를 배우고 실행할 뿐 GE의 그러한 노력은 간과하고 있다. 식스시그마는 학습하는 조직(Learning Organization)을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이고 조직이 항상 배움의 자세를 갖추도록 하는 뛰어난 방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생각하는 GE

이렇게 오늘 날 GE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은 워크아웃과 식스시그마라는 뛰어난 경영기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GE는 그것들을 통해 조직의 문화를 바꾸어 나가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얼마 전 잭 웰치 회장은 자신이 한 일의 60% 이상이 기업의 조직문화를 바꾸는 토양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살아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잭 웰치가 제시했던 성공하는 기업을 위한 조건들은 모두가 이러한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GE는 워크아웃과 식스시그마를 통해 기업의 민주주의와 학습하는 조직을 달성할 수 있었다. GE는 생각하는 기업이 된 것이다. 조직구성원들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개선하는 데 익숙해져 갔고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환경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창업이래 커다란 어려움 없이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노력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지식창조기업>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지식경영의 대가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는 얼마 전 GE를 지식착취 기업이라고 비난한 일이 있었다. GE와 잭 웰치는 조직구성원들을 워크아웃과 식스시그마 등의 기업 개선 작업에 강제로 몰아넣으며 그들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GE 안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GE의 백색가전 사업부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한 마디는 그러한 우려를 씻어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에 따르는 충분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은 없습니다. GE에서 계속 일할 겁니다.”

출처: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사보 <세계의 기업> 2001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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