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이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 – 필립스(Royal Philips Electronics)의 슬로건

조선시대의 판서 오상(吳祥)이 이런 시를 지었다.

“옛적의 좋은 풍속 땅을 쓴 듯 없어지고
다만 봄바람과 술 잔 사이에만 남았다.”
羲皇樂俗今如掃
只在春風酒杯間

이 시를 본 정승 상진(尙震)이 오상의 박절함을 나무랐다. 그리고 시를 이렇게 고쳤다.

“옛적의 좋은 풍속 지금도 그대로 있으니
봄바람과 술잔 사이를 살펴보아라.”
羲皇樂俗今猶在
看取春風酒杯間

오상은 옛날의 좋은 풍속이 사라짐을 아쉬워한 반면에 상진은 과거의 아름다운 풍속이 지금도 계속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상과 상진의 시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두 시가 네 글자만 다르다는 점이다. 상진은 오상의 시에서 구절마다 두 글자씩을 바꿨다. ‘같을 여(如)’와 ‘쓸 소(掃)’를 ‘오히려 유(猶)’와 ‘있을 재(在)’로, ‘다만 지(只)’와 ‘있을 재(在)’를 ‘볼 간(看)’과 ‘취할 취(取)’로 바꿨다. 변한 것은 네 글자인데, 관점과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다.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보자. 다음은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압록강 가는 길에’라는 시다.

“산들바람 불어오자 나귀 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봄비가 오고 나자 새가 훨씬 어여쁘다.”
微有天風驢更快
一經春雨鳥增姸

이 시를 짓는 과정에 재밌는 일화가 전해진다. 황현은 처음에 이 시를 아래처럼 지었다.

“산들바람 불어오자 나귀 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봄비가 오고 나자 새가 모두 어여쁘다.”
微有天風驢更快
一經春雨鳥皆姸

황현은 친구인 김택영과 이건창에게 이 시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시를 보고 한 글자를 바꿨다. 두 번 째 구절의 여섯 번째 글자인 ‘모두 개(皆)’를 ‘더할 증(增)’으로 바꾼 것이다. 이것을 보고 황현은 무릎을 쳤다. 처음 지은 것에 비해 훨씬 힘 있고 역동적이기 때문이었다. 한 글자 바꿨을 뿐인데 시의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진다.

작은 차이가 결과를 좌우한다. 잘 모르지만, 삶도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작은 차이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작은 것, 세부적인 것에 얽매여 전체를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정적인 작은 차이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작은 차이가 큰 영향력을 갖는가?’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급소, 발화점은 무엇이고 어디인가?’ ‘결과를 크게 좌우하는 작은 차이를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두고두고 고민해볼만한 화두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