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돈이다

왜 현재가치를 선호하는가?

인간의 일생은 유한하다. 그것은 각자에게 할당된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인류가 걸어온 그 긴 역사 속에서 나의 시간 그리고 일생은 아무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작고 짧은 만큼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 1시간 혹은 1년은 생을 단축하는 비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우리는 시간을 ‘돈’에 비유한다. 솔직히 이 비유는 합당치도 않고 마음에도 들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일생을 ‘돈’이라는 멍에를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양보해도 될 듯하다.

어쨌든 엄격한 의미에서 ‘시간은 돈’이라는 제목은 조금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은 돈의 가치를 바꾸는 마법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 마법과 같은 힘이 시간과 돈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 우리가 시간을 돈에 비유하는 것도 이러한 연관관계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시간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이 무척 어렵지만 재무적 관점에서는 그 이해가 훨씬 수월하다. 시간의 가치를 결정짓는 ‘고리’는 단 몇 개의 수식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식을 통해 우리는 시간과 돈 사이의 연관관계를 이해하고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시간과 돈이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기 이전에 좀 더 직관적으로 시간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을 살펴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왜 시간에 따라 돈의 가치가 달라지는지 알지 못한다면 그 관계를 나타내는 수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 그 시간적 간격 사이에서

지금 당장의 10만원과 5년 후 10만원 중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을까? 만약 가치가 다르다면 그 차이는 ‘시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까? 차이를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자세한 사연까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시간이 그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는 현재의 10만원이 더 큰 가치가 있다. 왜 그런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당신에게 지금 당장 10만원을 드릴까요, 아니면 5년 후에 드릴까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당연히 지금 당장 10만원을 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재무이론에서는 ‘유동성 선호(liquidity preference)’라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현재의 돈을 더 소중히 여기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가 있다.


현재를 선호하게 하는 원인들

앞서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현재의 돈의 가치를 더 크게 해 준다. 지금 당장 내가 죽을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거의 없다. 설사 운 나쁘게 돈을 받자 마자 죽는 불상사가 일어나더라도 이미 돈 10만원의 소유권은 나에게 넘어와 있는 상태이다. 내가 쓰지는 못하더라도 내 가족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죽어서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하지만 5년 후 10만원을 받기로 한다고 하자. 받기도 전에 생을 마치는 슬픈 일이 생길 수가 있다. 정말 운 나쁘게 죽기라도 한다면 돈을 받기는 그만큼 힘들어 질 것이다. 내가 죽는다면 돈을 빌려간 사람이 오리발 내밀기는 더 없이 좋은 상황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생산 가능성에 있다. 지금 당장 10만원 받아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의 주식을 시가 1만원에 10주 사두었다고 하자. 물론 회사가 망하는 불행한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정말 튼튼한 회사라고 가정하자. 5년 뒤 시가가 5만원이 되었다면 나는 40만원의 돈을 앉아서 번 셈이다. 하지만 5년 뒤에 10만원을 받기로 했다면 5년간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다못해 복권도 못 사고 경마도 못하는 것이다(이건 생산적인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만큼 뭔가 생산적인 일에 돈을 투자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 원인은 나의 선택과 관련된 것들이다. 즉 나 자신의 선택 가능성이 미래의 시간 속에서는 제약을 받게 되고 그것이 미래 10만원의 가치를 현재의 그것보다 작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시간이 돈 10만원의 가치를 변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은 다음의 두 가지 예에서도 동일한 힘을 발휘하지만 이전의 두 가지 이유와는 그 범주가 다르다.

물가는 일반적으로 상승한다. 어린 시절 돈 10원, 100원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했는가를 떠올려 보라. 지금도 그런가? 지금은 돈 1,000원으로도 그런 행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물가가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물가가 상승하는 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물론 물가는 하락하기도 하지만 아주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금 10만원과 미래의 10만원의 가치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10만원이면 좋은 지기와 밤새도록 소주를 마실 수 있는 돈이지만 5년 후 소주 한 병에 10만원이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일 외에도 우리는 현실은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그 끔찍했던 외환위기를 경험하리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잘 다니던 직장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 받기를 미뤘던 퇴직금을 못 받게 되리라고 어느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불확실성은 이렇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은 시간이 길수록 커지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현재의 10만원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돈 10만원을 5년 뒤 갚기로 한 친구의 마음이 바뀌어 우정이 상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장 10만원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시간이 가진 힘

이렇게 현재의 돈을 더 선호하도록 하는 데에는 4가지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좀 더 이론적으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시차선호(time preference)
  2. 생산성(productivity)
  3. 인플레이션(inflation)
  4. 불확실성(uncertainty)

이러한 원인들을 만드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4가지 원인이 잠재되어 있어 현재와 미래의 돈이 갖는 가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제 돈의 가치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그 가치를 구체적인 수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살펴 보게 될 것이다.

이 글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화폐의 시간가치(time value of money)’이다. 이는 재무이론 또는 회계학을 이해하는 가장 기초가 된다. 이론적 필요뿐만 아니라 실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한 번 알면 다시 공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쉽고 간단하지만 처음 내용을 접한다면 한없이 어렵기만 하다. 왜 시간에 따라 돈의 가치가 변할까? 어떻게 수치로 산출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디에 쓰는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생각만큼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글을 읽고 생각해 본다면 결코 어렵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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