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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Dream Kids on Network, SONY

외환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90년대 후반 무렵 우리들 앞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클릭과 클릭으로 연결된 복잡한 하이퍼링크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들을 쏟아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인터넷의 매력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두 빼앗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와 기회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촉망받던 젊은이 제프 베조스는 허름한 창고 하나를 빌려 인터넷 서점을 열었고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 가진 가능성을 확인해 주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수학 중이던 제리 양은 취미 삼아 만든 인터넷 디렉토리가 인기를 끌며 불과 수년 만에 세계적인 기업을 키워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인터넷이라고 하는 개방형 네트워크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 때문이었다.

새 세기에 대한 불안감과 경제 공황의 혹독함을 경험하던 우리 모두는 그 잠재력에 매료되어 인터넷의 광신도가 되어 갔다. 순수 인터넷기업과 그것을 지배하던 신경제 이론이 21세기의 대안이 되어줄 것 같았다. Brick & Mortar(구경제기업)들은 말 그래도 산산조각 난 벽돌과 시멘트 더미 같은 산업 폐기물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가상과 현실이 하나로

작년 초까지 테헤란로를 가득 메웠던 인터넷 기업의 간판들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가는 이제 그 바닥을 확인할 길조차 없다. 한때 거액의 옵션 차익을 꿈꾸던 인터넷 기업 직원들의 푸념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순수 인터넷기업의 모범답안 Amazon은 그 앞날을 예측할 수 없고, 꾸준히 수익을 내던 Yahoo마저 실적악화로 인한 주가하락과 CEO 교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전문지〈이코노미스트〉와〈비즈니스 위크〉는 아직까지 신경제의 실체에 대한 논란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사라져간 인터넷 기업들처럼 신경제는 허상에 불과한 것인가? 생산성과 효율성의 혁명을 이끌 인터넷 기반의 경영혁명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 우리는 지금까지 그 화려한 리허설을 보았다. 다소 떠들썩하고 낭비가 심하긴 했지만 훌륭한 본 공연을 위해 결코 아깝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지금 그 진정한 서막을 Real company(실물기반을 가진 기업)들이 열고 있다. Brick & Mortar로 불리던 구경제의 기업들이 가상의 세계로 사업 기반과 영역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 선봉에선 기업 중 하나가 소니이다.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네트워크의 중심에 선 소니를 통해 진화된 기업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인터넷은 가상(Virtual)이 아닌 현실(Real)이 되었다.


소니는 제조기업입니다

소니는 제조기업인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그렇지 않다. 모두 다 알고 있듯이 소니는 Walkman과 TV를 비롯한 AV 기기들을 생산하고 있다. 한때 MSX라는 기술 표준을 세우려다 포기했던 컴퓨터 사업도 VAIO라는 브랜드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소니 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로봇 강아지 AIBO는 1,300달러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무엇보다 소니 그룹 전체의 사업전략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성이 커진 Playstation2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소니의 제조부문은 그룹 전체 매출의 약 65%를 차지하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반면에 소니의 금융, 보험, 엔터테인먼트 부문은 우리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소니 보험의 경우 이미 20년의 역사를 통해 성공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고 최근에는 이를 토대로 은행업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세계적인 영화사인 Columbia의 주인이 소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Sony Music으로 이름을 바꾼 Columbia Music과 Playstation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SW 분야 또한 소니의 비제조부문을 이끌고 있는 중요한 사업 영역 중 하나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이러한 소니의 조직 구조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기존 조직 형태를 파괴하고 eHQ라 불리는 그룹 본사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출범시킨 것이다. 이 내용의 핵심은 제조부문을 조립, 반도체, 부품 3개 부문으로 통합한 후 분리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소니의 기술부문까지 분리된 부분으로 흡수 통합한다는 것이다. 올해 초 소니가 제조업을 포기하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한다는 소식을 전한 기사들은 소니의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쓰여진 것이었다. 정말 소니가 제조업을 포기하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다.

소니는 어떤 기업보다 기본을 중시하는 기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물기반(real-based)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또한 자사의 경쟁우위가 제조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제조부문을 포기할 가능성은 더욱 없다고 할 수 있다. 소니의 CEO 이데이 노부유키는 단언하고 있다, “소니는 제조기업입니다.”


네트워크의 시대에 달라지는 것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는가? 제조부문을 통합하여 분리한다지만 소니는 여전히 제조기업이다. 그리고 소니가 그동안 벌여온 제조부문과 비제조부문의 사업간 상관관계도 희박한 것 같다. 일본의 기업집단은 한국의 재벌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듯 보인다.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소니가 Columbia를 인수하며 받았던 비난을 또 다시 모면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20세기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브로드밴드 네트워크(Broadband Network) 즉, 인터넷이 소니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니의 내부와 외부가 네트워크를 매개로 하여 디지털로 수렴(Digital Convergence)되고 있는 것이다. 소니의 제조부문 분리는 이렇게 소니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빠르고 경량화된 조직구조를 통해 네트워크라고 하는 국경없는 영토에 적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그 시점은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

우선 인터넷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 인터넷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가상(Virtual) 현실이 아닌 실존하는(Real) 현실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가 나누는 정보의 양과 그것을 전달하는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 시간, 속도, 질량 그리고 수많은 물리적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의 삶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도 다를 바가 없다. 이전과 다른 조직 구조와 경영 방식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그것을 파괴할 용기도 필요하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더 이상 국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렇게 완전경쟁의 상태에 가까워질수록 제조업은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소니가 아니어도 TV와 Walkman을 생산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 격차는 줄고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네트워크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가 우리의 일상과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이점들을 누리게 될 것이다. 몇 가지 증거들이 있다. IBM은 이제 서버를 만들고 파는 기업이 아니다. 그들은 서비스와 브랜드를 팔고 있다. 그 막대한 부가가치를 인터넷이라고 하는 네트워크로부터 창출하고 있으며 기업이 처한 다양한 문제들을 네트워크를 이용해 해결해 내고 있다.

GM이 대표적인 제조기업인가? 대답은 아니다이다. GM은 자동차 산업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고 수많은 부품 공급자와 제조업체 그리고 고객들을 e-GM이라는 네트워크로 묶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들은 GM이라는 브랜드와 서비스 역량만을 남긴 채 제조부문을 분리할 것이다. 부가가치의 원천이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네트워크가 지금 수많은 기업들과 고객들을 하나로 묶고 있으며 이제까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소니가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움직임은 이제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 그것을 체험하기에 다소 이르긴 하지만 소니의 변화는 IBM과 GM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곧 느끼게 될 것이다. 소니의 제조부문 분리는 사업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소니를 만들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최근 Price Waterhouse Coopers에서 Meta-Capitalism이란 개념을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메타 기업(Meta Company), 즉 핵심역량으로 브랜드와 서비스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문을 아웃소싱하는 기업 형태가 아니면 네트워크 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의 아웃소싱은 우리가 이제까지 알던 것과는 다르다. 정보 비대칭과 불완전 경쟁이 이전의 아웃소싱을 지배하던 문제점들이었다면 메타 경제에서의 그것은 좀더 완전한 경쟁에 가까우며 완전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고객과의 확고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메타 기업 형태의 기업 조직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금 소니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소니의 엔터테인먼트 부문 강화와 금융업 진출은 이러한 조직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의 전자상거래 분야에 투자하며 소매유통 분야에까지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소니의 변화는 브로드밴드 네트워크가 가진 이점을 누리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부문으로 사업영역을 옮겨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 이후, 소니가 분리해 낸 제조부문의 제품들이 소니와 고객을 연결하는 첨병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 변화한다

소니 조직 내부의 변화는 분명히 중대한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변화를 느끼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기업이 어떤 형태로 변하든 고객과의 관계와 고객들의 생활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소니는 어떻게 변화하고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이 질문의 핵심은 네트워크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그리고 그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Playstation이다. 게임기라는 사실이 우리를 다소 당황하게 한다는 사실만 빼면 플레이스테이션은 사람들에게 가장 친화적이고 적합한 매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홈 게임기 시대를 연 장본인은 닌텐도였다. 소니는 닌텐도와 함께 게임기 개발을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게임기 시장의 주도권을 지키길 원했던 닌텐도가 소니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소니는 게임기 시장에 직접 진출하게 됐고 95년 플레이스테이션을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일한 경쟁상대로 꼽히던 세가의 Dreamcast를 침몰시키기까지 했다. 이 때는 소니가 디지털 경영의 이단자로 불리는 이데이 노부유키를 CEO로 받아들이고 창립 50년 후 새로운 50년을 선언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 때까지 플레이스테이션은 단순한 게임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디지털과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소니에겐 게임기 이상이었다. 5년 간의 개발과정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은 철저하게 네트워크와 연결되는 Digital Device로 설계되고 거듭났다. 미국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2의 재고가 남은 온라인 쇼핑몰을 찾아주는 검색 사이트가 등장할 정도로 그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DVD 재생 기능을 갖춘 원가 5만 엔짜리 첨단 게임기를 단돈 3만9천800엔에 파는 소니의 가격 전략도 한몫했다. 소니는 손해를 보는 만큼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떤 이익이 있기에 적자를 감수하며 플레이스테이션 2를 파는 것일까? 단기적으로 게임 SW 판매 증가로 인한 이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수천 종에 달하는 소니의 게임 SW는 플레이스테이션 2 판매의 직접적인 수익 원천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소니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조직을 변화시키고 있지 않았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니의 영화와 음악, 방송이 플레이스테이션2와 연결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 2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집 안에서 은행과 거래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소니의 전자상거래 사이트들을 이용해 쇼핑을 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소니의 모든 제품은 네트워크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파급 효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 될 것이다. 소니 제품을 가지고 있다면 좋던 싫던 소니가 말하는 Sonystyle의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소니 전략의 중심은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이 네트워크이다. 소니의 제품은 소니와 고객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훌륭한 매체의 역할을 할 것이다. 결국 이렇게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막대한 가치가 창출되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소니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소니의 조직 재편은 오랜 시간동안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과 성장가능성을 극대화하도록 발전해 왔다. 소니 제품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어 가고 있다면 소니의 조직과 고객들은 소니의 네트워크로 수렴해 가고 있는 것이다.


Digital Dream Kids on Network, SONY

21세기 시작과 함께 순수 인터넷 기업들은 새로운 환경의 대안이 되지 못한 채 사라져가고 있다. 그것을 대신해 한동안 위축돼 있던 전통 기업들이 인터넷이라고 하는 개방형 네트워크에 빠르게 적응해 가고 있다. 그들은 실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빠르고 유연한 네트워크의 장점까지 가지고 있다. 기업마다 사업영역마다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방법과 전략은 다를 수 있지만 네트워크가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이 진화를 시작한 것이다.

한때 우리는 실패를 경험했다. 아니, 진정한 네트워크 기업의 출현을 위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너무나 성급하게 기존의 것을 버리려 했다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오직 발전과 진화만이 있을 뿐이다. 순수 인터넷 기업은 우리에게 너무 낯선 것이었다. 과거와의 단절 또한 너무도 컸다. 이제 IBM과 GM 그리고 소니가 대안이 될 것이다. 지금 현재 소니가 추진하고 있는 전략의 모습은 상황과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 시대의 승리자가 되고자 하는 노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Digital Dream Kids on Network라는 목표처럼 네트워크를 향한 원대한 꿈을 이룰 소니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출처: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사보 <세계의 기업> 2001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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