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와 무대 뒤

“나는 비즈니스가 세계적 수준의 레스토랑과 여러 모로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고급 레스토랑이라 할지라도 주방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음식들은 완벽하게 장식해 유리 접시에 담겨진 테이블 위의 음식만큼 훌륭해 보이지 않는 법이다.” – 잭 웰치(Jack Welch)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를 촬영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빅터 플레밍(Victor Flemming) 감독은 영화의 ‘대연회’ 장면을 촬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플레밍은 그 장면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입을 실크 속치마를 수천 달러에 구입했고, 계산서는 제작자인 데이비드 셀즈닉(David Selznick) 앞으로 청구되었다. 계산서를 본 셀즈닉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영화에 투입된 비용이 이미 예산을 넘어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제작자이면서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카메라 앵글이 어디에 맞춰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불필요한 비용이었다.

셀즈닉은 플레밍을 만나자마자 소리 질렀다.
“뭐야, 실크 속치마라고! 관객은 그 속치마를 볼 수 없어. 그 장면은 모두 허리 위만 잡는 거잖아!”

플레밍이 대답했다.
“그래요, 모두 허리 위만 잡죠. 하지만 관객들은 춤추는 사람들의 눈 속에서 실크를 보게 될 겁니다.”

영화 제작 비용과 촬영되는 부분만 생각한다면 배우들이 실크 속치마를 입던 싸구려 속옷을 입던 뭐를 입던 상관이 없다. 그러나 플레밍은 실크 속옷을 입은 척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입은 배우의 행동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우가 느껴야 관객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미묘한 차이를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카메라에 잡히는 부분은 무대 위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무대 뒤다. 배우를 캐스팅하고 각본을 쓰고 대사를 외우고 의상을 준비하고 분장을 하는 것, 세트를 제작하고 조명을 밝히고 작곡을 하고 편집을 하는 것. 관객이 보지 못하는 모든 부분이 무대 뒤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영화를 만드는 경우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내놓는 경우, 기업이 상품을 만들어 제공하는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고객은 무대 뒤를 잘 모른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드물지만 무대 뒤에 호기심을 느끼고 알려고 노력하는 고객들도 있다. 그런 고객들을 매니아(mania)라고 부르고, 이런 매니아들을 보유한 브랜드를 우상화된 브랜드(cult brand)라고 부른다. 드라마로 따지면 ‘다모’에 미쳤던 ‘다모 폐인’이나, 브랜드를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문신까지 그리는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 오토바이의 HOG(Harley Owners Group) 등을 매니아와 컬트 브랜드의 예로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무대 뒤는 무대 위에 비해 어지럽고 보잘 것 없다. 화장 지운 여자의 얼굴과 같다(적절한 비유가 아니라면 관용을!). 진한 화장일수록 지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법이다(이것 또한 좋지 않은 비유라면 용서를!). 월트 디즈니(Walt Disney)가 디즈니랜드의 분장실과 연습실 공개를 엄격히 통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깜찍한 미키마우스 마스크 뒤에 있는 거친 피부의 남자를 아이들은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혁신을 꾀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곳은 무대 뒤다. 그곳에서 시작되지 못하고 그곳을 담지 못하는 혁신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혁신(innovation)이라 부를 수 없다. 또한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곳도 무대 뒤다. 대개 무대 위에 서있는 사람의 뒤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지원하고 돕는다. 그러지 못하면 서로 멀어지고 멀어지면 관객을 잃고 고객을 잃는다. 잭 웰치가 ‘벽 없는 조직’을 수백 번이나 외친 것은 장난이 아니다.

내부 고객인 구성원들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것은 대개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뒤다. 행복한 직원이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구성원들의 만족도가 고객(외부 고객)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대 뒤가 살아있지 못한데, 무대 위가 지속적으로 좋을 수는 없다.

무대 뒤와 무대 위라는 것이 모든 기업과 업종에서 딱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둘이 곁치고 많이 겹치는 기업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대 뒤와 무대 위라는 관점이 새로운 사고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과 조직 둘 다에서 그렇다. 두고 찾아보면 요긴한 것들을 건질 수 있는 보물 창고와 같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과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은 무대 뒤’라는 점이다. 고객이 보면 실망할 수 있지만, 뒷마당이 내가 먹고 사는 곳이고 나의 일터고 동료가 있는 곳이다. 그곳은 기업의 과거가 존재하고 현재가 생동하고 미래가 창조되는 곳이다. 무대 위의 열정이 무대 뒤의 그것을 넘어서는 경우는 드물다. 무대 뒤의 정신이 무대 위를 결정한다. 무대 뒤의 열정이 무대 위로 뿜어져 나와 승부를 결정짓는다.

무대 뒤에서 승부의 절반은 이미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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