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時間, time)

“오직 시간을 거쳐야만 시간은 정복된다.”  – 토마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볼테르(Voltaire)의 대표적인 책으로 ‘자디그(Zadig)’가 있다. 자디그는 볼테르가 자신의 명성과 실의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테마로 한 철학풍의 콩트이다. 그 중 시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겨있는 부분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중에,
가장 길고 동시에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고 동시에 가장 느린 것,
가장 작게 쪼갤 수 있고 동시에 가장 크게 확대할 수 있는 것,
가장 가볍게 취급되고 동시에 가장 애석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작은 일이라도 모두 감싸 안으며 모든 위대한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답은 ‘시간’이다.
시간 이상으로 긴 것은 없다. 그것은 영원을 측정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시간 이상으로 짧은 것은 없다. 그것은 소망을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짧다.
시간 이상으로 느린 것은 없다.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시간은 무한히 펼쳐지고, 무한히 작게 축소될 수도 있다.
시간은 모두가 소홀히 다루면서도, 모두가 지나가는 뒷모습을 아쉬워한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시간은 후세를 위해서 가치 없는 것을 망각의 바다에 버리고,
진정으로 위대한 행위에 영원의 목숨을 준다.” – 볼테르(Voltaire)의 ‘자디그(Zadig)’ 중에서

시간은 모순이다.
길면서 짧고 빠르면서 느리다.
시간은 기억을 담고 있지만 그것을 잊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연의 아픔은 시간이라는 약으로 치료된다고 말한다.

시간은 아이러니다.
우리는 시계를 통해 시간을 보지만 시간은 시계가 아니다.
사람들은 곧잘 ‘시간 관리’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허구이고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관리의 핵심은 통제인데, 우리는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이 우리를 통제한다.

우리는 다만 시간을 겪을 뿐이다.
삶은 시간을 경험으로 채우는 것이다.

시간은 항상 적절하다.
다만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언제’와 ‘무엇’이 딱 맞는 것을 타이밍이라고 한다.

1년 전 오늘은 무엇을 위한 시간이었을까?
1년 후 오늘은 무엇을 위한 시간이 될까?
바로 오늘은 무엇을 위한 시간일까?

과거는 희미하고 미래는 아득하다.
결국,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한다.
어제의 내가 오늘을 통해 미래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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