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에 관하여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 정민,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2004년)’ 中

어느 날 전설적인 무용가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에게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훌륭한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춤추는 시간이지요.”
니진스키가 대답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황홀한 순간이 있어요.”
그가 덧붙였다.
“그런 순간은 춤추는 자가 사라지고 오직 춤만이 남는 순간이지요. 저는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답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도 니진스키가 받은 것과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기자가 한창 그림 그리기에 몰두해 있는 그에게 묻자,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일개 화가일 뿐, 당신들이 소문으로 들은 위대한 피카소가 아닙니다. 게다가 더 깊은 순간이 오면 그때는 이 화가마저 사라지고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단지 그림만이 남겠지요.”

몰입은 이런 것이다.

시카고 대학에 있다가 현재는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chaly Csikszentmihalyi)는 몰입을 ‘플로우(flow)’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플로우는 ‘어떤 행위에 깊게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독서 삼매경(三昧境)’에서 삼매경도 플로우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것도 플로우다. 플로우는 개념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종종 겪는 그런 것이다.

어떤 일이나 활동을 하다가 시계를 봤을 때, 시간이 한참을 지난 걸 알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시계를 봐도 시간을 잘 실감하지 못한다. 시간을 잊을 정도의 집중, 이것이 몰입이다. 어려운 것은 일상과 삶 전체를 하나의 통합된 플로우로 변화시키는 것이고, 이것이 중요하다. 칙센트미하이는 플로우를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이라고도 부른다. 플로우라 부르든 최적 경험이라 부르든, 아니면 몰입이라고 하든지 간에 ‘이것’은 니진스키와 피카소가 말한 바로 ‘그 순간’이다.

최적 경험 속에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행동을 더 이상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플로우 경험을 늘리고 그것을 습관화할 수 있을까?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플로우를 가능하게 하는 내적인 조건’이다. 그는 이것을 ‘자기목적적(autoelic) 성격(혹은 자아)’이라 부른다. ‘자기목적적’이라는 용어는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오토'(auto)’와 목적을 의미하는 ‘텔로스(telos)’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자기목적적 성격의 핵심은 ‘어떤 행위나 경험 그 자체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어떤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하는데 능숙하다. 그리고 발견한 의미와 부여한 의미 자체를 목적으로 삼거나, 의미를 좀 더 가치 있는 목적으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니진스키와 피카소가 그런 사람들이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자기목적적 성격’과 ‘자의식이 강한 성격’은 아주 다르다는 점이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일순위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목표와 행동에 집중한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자신의 이익 혹은 바람에 부합하는지를 따지고 평가하기 마련이다. 이래서는 완전한 몰입이 어렵다. 플로우는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행동과 경험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것이다.

플로우의 두 번째 조건은 ‘플로우를 유발하는 활동의 조건(특징)’이다. 이것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조건이 필수조건은 아니다. 이것들을 모두 갖춰야만 플로우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연구 결과로 볼 때, 이런 조건들을 갖춘 활동일수록 플로우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이해하면 된다. 네 가지 조건은 플로우의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나, 도전적이고 분명한 목표. 도전적이라는 것은 ‘열심히 하면 해낼 수 있는 수준’을 의미한다. 분명하다는 것은 ‘긴 설명 없이 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표’와 ‘목표 달성을 위해 쏟는 노력’ 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처음에는 목표가 그 목표에 기울이는 노력을 정당화시키지만, 나중에는 바로 그러한 노력들이 목표를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를 강화한다.

둘, 기술과 능력. 칙센트미하이는 ‘기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가 말하는 기술은 물리적 기술뿐만 아니라 심리적 기술까지 포함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솜씨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솜씨도 그가 말하는 기술에 포함된다( 참고로 플로우에서 말하는 활동이나 경험은 운동 같은 ‘신체적 활동과 경험’, 명상 같은 ‘심리적 활동과 경험’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개념적으로 플로우는 따분함과 불안감의 사이에 존재한다.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기술 수준이 목표가 주는 어려움에 미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불안감을 느끼고, 반대로 기술 수준이 목표 달성의 어려움보다 더 높을 때는 따분함을 느끼게 된다. 달성할 수 없는 목표도 문제지만 부족한 기술도 플로우를 방해한다. 따라서 적절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관건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적절한 기술을 개발하고, 학습과 경험을 통해 기술 수준이 높아지게 되면 목표의 수준도 함께 높여야 몰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셋, 분명한 규칙. ‘심리적 엔트로피'(entropy)’는 ‘의식의 무질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심리적 엔트로피의 반대 상태, 즉 ‘의식의 질서 상태’가 바로 플로우다. 규칙이 분명하지 않은 활동일수록 사람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효율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한다. 야구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200쪽 짜리 게임 설명서를 읽어야 한다면, 몰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 우리가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관람하거나 실제로 운동하는데 명확한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쇼핑을 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상품 선택의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재다보면 살 수가 없고, 쉽게 지갑을 열기에는 못 본 것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쇼핑이든 게임이든 일이든 간에 선택의 범위가 제한되고 분명해지면 목표와 그 목표에 따르는 규칙들에 전념하기가 더 쉽다.

넷, 즉각적인 피드백. 여기서 말하는 피드백은 ‘목표를 향해 잘 가고 있다는 증거’를 말한다. 어떤 종류의 피드백이든 목표를 향한 진척상황과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을수록 좋다. 대개 야구 경기에서 한 타자는 공 몇 개 안에 진루, 아웃이 결정된다. 득점 되는 순간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만약, 한 타자에 대한 심판의 판정이 30분 씩 걸리고, 득점 결과를 하루 후에 알 수 있다면 야구는 수면제에 가깝지 않을까.

몰입했을 때는 스스로를 잊게 되고 자신에 대해 잘 모르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나아지고 있는 것, 의미 있는 개선은 그렇게 이뤄지고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도약으로 비춰지게 된다. 이것이 몰입의 힘이 아닐까.

※ 플로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 책을 참고하세요.
1) 몰입의 즐거움(Finding Flow, 1998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저, 이희재 역, 해냄출판사. 1999년.
2) flow(flow, 1991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저, 최인수 역, 한울림,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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