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읽으면, 경제학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기본 이론들과 용어들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면 이렇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분업(division of labor),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 비교우위론(Law of Comparative Advantage),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경제학적 지대(economic rent), 명목임금(nominal wage)과 실질임금(real wage), 세이의 법칙(Say’s Law), 유물사관(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historical materialism), 잉여가치(surplus value), 착취율(ration of exploitation), 노동가치설(labor theory of value), 수확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returns), 한계효용(marginal utility), 수요의 법칙(law of demand), 한계수확(marginal return), 탄력성(elasticity), 명목이자율(nomial interest rate), 실질이자율(real interest rate), 제도학파(制度學派, institutionalist), 한계소비성향(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 MPC), 한계저축성향(marginal propensity to save, MPS), 승수이론(乘數理論, theory of multiplier), 현시적 여가(conspicuous leisure), 현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 구축효과(crowding out),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 효율적 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

얼핏 봐도 현기증이 일어나는 이런 용어들을 저자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는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어떻게? 유머스럽고 일상적인 사례와 경제학자에 대한 일화 등을 통해서. 어려운 것을 쉽게 요리해 제공하는 것, 이것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첫 번째 가치이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 존 메이나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등 경제학을 주름잡았던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등장한다. 이 경제학자들의 핵심적인 이론과 주장, 개인적인 성향과 당시의 상황,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이 책은 채워져 있다. 이 책은 경제 이론보다 경제학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자는 위대한 경제학자들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한 명이나 두 명 정도의 경제학자를 선택하여 좀 더 공부해볼 수도 있다. 이 책은 독자가 경제학자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두 번째 가치이다.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경제학자는 앨프레드 마셜이었다. 그는 이론과 현실의 조화, 제자 양성, 지속적인 개선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에 도달하지 못했다. 마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과 그가 이뤄낸 성과는 완벽함을 향한 큰 한 걸음이었다. 그는 후진을 양성했고 경제학 이론에 현실이 반영되도록 했다.

“이 책은 역사상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일생과 그들의 아이디어들을 통해 현대 경제 원리들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겪는 경제문제 역시 애덤 스미스이래 그의 후예들이 겪어야 했던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기에 그들의 말들은 설득력 있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들의 이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룬 많은 여담들을 독자들은 재미있고도 유용하게 느꼈으면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자가 주고 싶었던 것을 독자들은 받았다.

“이 책은 근대 경제학의 주류를 살펴보고 과연 누가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이렇게 영속하는 경제학의 모형들을 만들어 냈는가하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그 경제학자들의 지혜를 좇고자 한다.” 이런 저자의 의도는 ‘대체로’ 충실히 지켜졌다.

경제학의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따른다. 그래서 재밌다. 경제는 정적이며 동적이다. 그래서 어렵다. 경제현상에 대한 그 법칙들의 설명은 ‘대체로’ 정확하다. 저자는 책의 종반부에서 이렇게 말한다.

“경제학은 정확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과학이 아니다. 차라리 일반적 성향이라 할 수 있을까. 모든 ‘법칙’에 예외가 따르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이다. 생산량 증가는 대체로 가격하락을 초래한다. 베블런식의 현시적 소비형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통화량 증가는 대체로 이자율을 낮춘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이자율을 끌어올리지만 않는다면. 주가는 대체로 미래의 현금유동(cash flow)에 대한 합리적 예측을 나타낸다. ‘동물적 활력(animal spirit)’이 투자가들을 공포에 빠뜨려 동요 시키지만 않는다면. 투자가들은 대체로 한계효용과 한계비용이 같아질 때까지 위험을 감수한다. 선견지명을 지녔다는 슘페터식 초능력 투자가들만 제외하고는.”

내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를 처음 읽은 것은 2002년 여름이었다. 초독의 느낌을 나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만약 누군가 내게 ‘경제학과 관련해서 이제껏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은 어떤 겁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바로 이 책!’” 이 책을 참 재밌게 읽었어나 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대학시절 경제학원론에서 겨우(그리고 어거지로) B+을 받았던 내가 경제학 책을 완독하고, 게다가 재밌게 읽었으니 얼마나 흐뭇했을까. 이 책은 내게 그런 흐뭇함과 유쾌함을 안겨준 책이었다.

3년가량 지나 다시 읽어봤다.

느낌은? 처음 읽을 때만 못하다. 그 새 머리가 조금 큰 건가. 아니면 요즘 기분 탓인가. 배운 것은? 처음 읽을 때보다 조금 더 깊어진 것 같다. 책은 그대로인데, 배운 것이 더 많은 걸 보면 3년 간 놀지만은 않았나 보다. 어쩌면 좀 더 깊은 텍스트와 사고를 하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토드 부크홀츠는 독자들에게 열심히 배우고 노력한 ‘경제학자들에게 약간의 박수’를 쳐줘도 좋지 않겠냐고 묻는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아마 경제학자보다 토드 부크홀츠에게 기꺼이 박수를 쳐줄 것이다.

잡초 없는 정원은 없고, 정원에는 잡초가 있다. 잡초에 초점을 둘 것인지 아니면 정원에 초점을 둘 것인지는 그 사람의 마음이다. 나는 후자 쪽이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는 풍성하고 보기 좋은 정원과 같다. 그리고 이 정원에도 잡초는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기술된 경제사상서이다. 그것도 미국과 영국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을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경제에 대한 사고가 편협해질 수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이다. 또한 저자가 명백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이론의 합리화도 문제다. 특히 자유무역에 대한 주장은 내 신경을 많이 거슬렀다. 한 나라가 자신의 입맛대로 주도하는 자유무역의 폐해와 신자유주의의 야만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한 좋은 입문서다. 그러나 균형 잡힌 사고를 위해서는 이 책 외에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책들도 함께 읽어야 한다.

◎ 저자의 목소리: 인용
– ‘[]’ 안의 숫자는 page를 지칭한다.
– ‘인용’에서 별다른 표기가 없을 경우, 저자의 말이다.
– ‘※’ 표시는 간단한 설명과 나의 느낌이다.

[20]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46] 경제학사상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한 구절에서 스미스는 이렇게 공언한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 제조업자들의 박애심 덕분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다.” 아무리 돼지 잡기, 맥주 양조, 빵굽기 등을 즐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아무런 보상이 없다면 그 일을 하루 종일 하려 들진 않을 것이다. 물론 스미스는 인간이 오직 이기적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는 하지 않았다. 스미스는 다만 이기적 본능이 친절성, 박애심, 희생정신 같은 것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인간 심성의 고귀한 측면에만 사회를 맡기고 미래를 의지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인간의 본능 중 가장 강한 본능인 이기심을 어떻게 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잘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47] 스미스는 ‘국부론’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공익(共益)”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공익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조차 모르는 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는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 결실도 얻게 된다.”

[170]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이 여기에 있다. 이 변증법의 대가는 가장 극적이라 할 수 있는 갈등 하나를 고려대상에서 빠뜨렸다. 바로 관념론적 원인(idealistic causes)과 유물론적 원인(materialistic causes)의 충돌이다. 마르크는 유물론적 원인들만이 모든 사회현상의 원인인양 묘사한다. 물질의 힘은 정기적으로 사회의 관념과 상부구조를 뒤흔들고 변화시킨다. 그러나 여기서 마르크스는 관념의 힘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의 경제학 전체는 이 오류에 감염되어 있다.

[190] 마르크스가 빠뜨린 것은 무엇인가? 상상력, 독창성, 경영능력과 같은 것들이다. 부의 창출이란 유형(有形)의 투입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190] … 무형(無形)의 요인들은 기업들 간이나 국가들 간의 경쟁에서 종종 결정적 승부수로 작용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이윤 증대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이나 경영법과 같은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간과한다.

[214] 마셜은 ‘관찰’이 주도하는 연역적 정치경제학(deductive political economy guided by observation)‘을 추구했다고 한다. 상아탑과 대중 술집 사이에서 중도(中道)를 찾고, 순수한 이론과 세속적 현실 사이에서 중용(中庸)을 취함으로써 마셜의 경제학은 도덕론자들과 사회학자들의 비판을 다같이 피해갈 수 있었다.

[344] 재정적자가 분명 경제를 해치기는 하나 그 고통이란 간접적이고 분산적인 것이다. 반변 그 혜택은 직접적이고 개인적이다. 정부가 세금을 인하시키거나 지출을 늘릴 경우, 국민들은 일단 싱글벙글 웃는다. 국가에 바칠 돈을 스스로를 위해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재정 흑자는 세금인상이나 지출감소를 뜻하기에 국민들에게 직접적 고통을 준다. 세금이 인상되면 국민들은 소비를 줄여야 한다. 정부가 지출을 줄이면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수혜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재정균형은 분명 건강한 경제를 낳는다. 그러나 그 혜택은 훨씬 나중에 돌아올 뿐 아니라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간접적으로 도울 뿐이다. 국민들은 국가경제가 나아지면 개인적으로 어떤 혜택이 돌아올 것인지를 한참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380] 아무리 좋은 정책도 이처럼 피해자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민주정부를 설득시키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좋은 경제정책이 반드시 인기 있는 경제정책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단기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저인플레와 투자활성화의 혜택이 국민전체에게 인식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 수지맞을 때는 가만히 있고 그렇지 못할 때는 울상 짓는 것이 인간이다. 더욱이 언론은 행복한 사람은 보도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나온다고 해서 좋은 경제정책을 포기해선 안 된다. 이들의 압력에 굴복하면 경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 즉, 좋은 경제정책은 피해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가 누리는 혜택이 증가하는 정책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385] 슘페터는 명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하였다.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은 경제적 요인이 아니라 정치적 요인이라고 보았다. 자본주의의 지나친 경제적 성공이 결국 자본주의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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