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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를 파는 기업, P&G

흔히 P&G라 불리는 Procter&Gamble은 세계 최대의 소비재 생산 기업이지만, 막상 어떤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 본다면 이내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서 P&G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몸을 가꾸고 보호하는 일에서부터 옷을 세탁하고, 식기를 세척하며, 아이를 기르고, 입맛을 돋우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P&G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 왔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아이보리 비누, 타이드, 팬틴, 비달사순, 페브리즈 그리고 프링글스 등은 P&G를 대표하는 상품들이다. 이렇게 세계적인 상품을 만드는 기업인만큼 떠들썩하게 P&G라는 이름을 알릴 만도 한데 각 제품들은 마치 서로 다른 회사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P&G라는 이름은 뒷전에 밀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P&G를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G의 제품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경영원칙과 마케팅 원칙에 따라 우리들에게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P&G의 역사와 성장은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아이보리 비누가 1879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120여 년간 P&G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P&G의 브랜드들이 갖는 가치와 그것을 지키기 위한 회사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P&G가 지난 160년이라는 긴 역사동안 비교적 큰 굴곡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빛나는 브랜드들이 있었다. 그리고 브랜드를 가꾸고 지키기 위한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브랜드를 파는 기업

회사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P&G는 프록터와 갬블에 의해 1837년 설립됐다. 동일한 원재료를 이용해 사업을 하던 양초 제조업자 윌리엄 프록터와 비누 제조업자 제임스 갬블은 동서지간으로 의형제를 맺을 만큼 사이가 좋았고, 이를 계기로 신시내티에 기반을 잡게 됐다. 현재는 자산가치 34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초기 P&G의 성장은 무척 더디기만 했다. 창업 후 15년이 지나서야 시 중심가에 상점과 제조설비를 갖출 수 있었고, 20년이 지난 후에도 공장 종업원의 수가 80여 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하지만 초기의 초라한 규모를 무색하게 하듯 2001년 현재 P&G는 140여 개 국에서 300여 개의 브랜드를 공급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450억 달러에 달하는 브랜드 가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포춘과 파이낸셜 타임즈가 선정하는 존경 받는 기업의 하나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2000년 이후 부진한 실적으로 CEO가 교체되는 등 신경제와 미국의 경기침체의 영향을 동시에 받고 있기는 하지만 P&G가 가지고 있는 위치는 상당한 기간 동안 확고할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의 P&G를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P&G의 뛰어난 브랜드들이었다. P&G는 크게 Laundry Cleaning, Paper Goods, Beauty Care, Food Beverages 그리고 Health Care의 5가지 제품군을 통해 30여 브랜드를 소개하고 있고 국내에는 10여 종의 대표적인 상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각각의 브랜드들은 독자적인 마케팅 방식을 가지고 언제나 변함없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성공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P&G는 브랜드를 더욱 가치 있는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160여 년의 세월동안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브랜드를 통한 내부 경쟁방식을 도입했고, 기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브랜드 자산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으며, 한 순간도 변함없이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했다.


만족하지 말라

영원한 기업은 없다. 때론 이론적 필요에 의해 기업이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가정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다수의 기업들은 생명체와 같은 일생을 경험하게 된다. 수 십년 전 기업의 순위를 본다면 지금 현재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제의 영광을 오래도록 지속하며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많은 기업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업의 생명을 단축하는 것일까? 아마도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는 자기만족일 것이다.

한 시대 최고의 기업은 자기만족에 빠지는 순간 더 이상의 발전을 멈추고 끝없는 추락을 시작하게 된다. 비대해진 몸집과 나태해진 조직은 압도적인 지위를 즐기며 이전과 같은 활기와 창의에 가득한 상태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P&G의 CEO였던 리처드 듀프리는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20세기 초반 P&G가 이룩한 업적은 P&G를 자만과 자기만족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전환점이 필요했다.

리처드 듀프리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P&G를 언제나 새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미 자사의 모든 제품들이 시장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고,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당시 마케팅 매니저였던 닐 매컬로이의 제안은 리처드 듀프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1930년대 초반 P&G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시도를 시작했다. 자사의 각 제품을 마치 다른 회사에서 생산된 것처럼 여기고 서로 경쟁을 벌이도록 하는 제품관리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내부로부터 변화와 개선을 촉진하는 강력한 추진체가 생긴 것이었다.

자사의 브랜드들이 서로 경쟁을 하기 시작하면서 P&G는 시장에서 더욱 확고한 위치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조직 구성원들에게는 경쟁사의 브랜드 이외에 또 다른 경쟁자가 생기게 됐다. P&G는 더 이상 현재에 만족할 수 없었다. 각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던 직원들은 미국 최고의 경쟁자를 상대로 또 다른 전쟁을 벌여야 했다. 이로 인해 P&G의 브랜드들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으며 그 가치가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P&G가 단순히 내부 경쟁을 유도하는 방법만으로 브랜드 자산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도 브랜드 자체가 갖는 품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90년대 초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하라

P&G는 양질의 제품과 강력한 브랜드를 바탕으로 고가정책을 펴며 1980년대 가파른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마케팅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P&G의 80년대는 순탄한 미래와 성공을 보장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P&G와 거의 비슷한 역사와 길을 걸어온 콜게이트를 비롯한 경쟁사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80년 이전까지 P&G의 위세에 눌려 기업가치가 하락하던 콜게이트는 P&G가 소홀히 여기던 부분을 집중 공략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소 높은 가격을 유지하던 P&G를 공격하기 위해 경쟁사들이 가격 인하를 시작하면서 그 압력이 거세져만 갔다.

1989년 P&G의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한 Edwin L. Artzt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리스트럭처링을 단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지속됐다. 당시 종업원의 12%에 달하던 13,000여 명이 해고됐으며 총 147개의 공장 중 30개의 공장이 폐쇄됐다. P&G는 그 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5년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하고 높이는 활동은 이전보다 더욱 활발해졌다. 리스트럭처링을 하는 5년의 기간동안 P&G는 연간 6억 7천만 달러에 달하던 R&D 비용을 11억 4천만 달러로 늘렸으며, 광고비용은 17억 4천만 달러에서 31억 2천만 달러로 대폭 증가시켰다. 투자는 헛되지 않았고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P&G는 1994년 22억 달러의 이익을 올림으로써 21년 만에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2000년 초반까지 16년간 지속된 주가상승과 함께 P&G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브랜드가 가진 품질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도적이라 할지라도 브랜드가 가진 고객의 신뢰는 영원할 수 없으며, 그래서 최고라는 자기 만족을 버리고 좀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통스러운 과정을 선택했던 P&G의 결단은 더욱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P&G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P&G의 진정한 가치는 그들이 지난 시간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회사와 그들의 브랜드에 대한 경영이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경영이념과 신뢰를 지켜라

P&G의 경영이념은 명쾌하다. 소비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최상의 품질과 가치를 지닌 제품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영이념 이전에 소비자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G가 만들고 있는 모든 제품과 브랜드에도 역시 이러한 가치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비록 각각의 브랜드들은 독자적인 마케팅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처음 제품을 출시할 당시 지니고 있던 가치와 약속을 그대로 유지하며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것이다.

P&G의 브랜드로서 세상에 처음 선보인 아이보리 비누는 120여 년의 세월동안 깨끗하고 순수한 피부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으며, 타이드는 1956년 출시된 이후 70번에 이르는 제품 개선을 수행했지만 여전히 어떤 제품보다 옷을 깨끗하게 세탁해 줄 것이라는 신뢰를 손상시킨 적이 없었다. P&G는 최고의 품질과 가치를 지닌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겠다는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며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난 경쟁우위인 고객과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P&G가 단순히 브랜드만을 파는 기업으로 남아 있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브랜드에 녹아 있는 P&G의 경영이념과 그것을 지키는 신뢰라는 가치가 없었다면 P&G의 성공은 허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렇게 자사의 제품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열정을 쏟고 그것을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 자신의 신념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브랜드를 통해 고객들에게 전달되어 오늘날의 P&G를 만들 수 있었다.


브랜드 그리고 P&G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인 소비재는 그 산업의 특성상 경쟁이 치열하다. 제품의 수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그 제품들 사이에서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품질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상점에서 비교적 눈에 잘 띄게 진열되어 있는 제품을 구입하거나 습관적으로 지금까지 쓰던 제품들을 고르게 된다. 또한 보통의 경우 하나의 제품만을 사용하게 될 뿐 여러 회사에서 나온 제품을 사 두고 선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어떻게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까? 그 해답이 바로 브랜드이다. P&G의 제품들이 뛰어난 품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쟁기업의 제품을 따돌릴 만큼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타이드가 아니어도 깨끗이 세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세제는 많이 있으며 크레스트가 아니어도 이를 닦을 수 있는 치약들은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분명히 자신이 선호하는 제품이 있으며 그것을 즐겨 사용하게 된다. 이것이 브랜드의 힘이다. P&G가 지난 한 세기 동안 쌓아온 브랜드 자산의 가치는 우리의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P&G의 제품들을 선택하도록 만들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신뢰는 더욱 커져 갔다. 단순히 브랜드의 이름이 갖는 지명도나 화려한 겉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P&G가 브랜드에 담아 고객에게 전해 주고자 했던 진정한 가치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P&G는 소비재 산업이 갖는 약점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세제를 치약을 그리고 화장지를 파는 기업이 아닌 탁월한 브랜드를 파는 기업으로 현재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P&G는 새로운 위기에 봉착해 있다.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의욕적으로 Organization 2005라는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던 CEO 더크 야거는 실패한 경영자로 오명을 남기며 사임해야 했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며 P&G를 괴롭히고 있다. 최근에는 브랜드와 주식가치마저 하락하며 P&G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껏 소중히 간직했던 가치와 노력들을 지켜나간다면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60여 년간 쌓아온 브랜드 자산들은 여전히 P&G와 함께 하고 있으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갈 강력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사보 <세계의 기업> 2001년 9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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