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기업의 유전자

누구에게나 인생이 있지만 누구나 그 인생을 멋지게 사는 것은 아니다. 하루를 사는 것이 버겁게만 느껴지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속된 말로 ‘쿨하게 사는’ 것이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올라 신화가 된 직장인이나, 회사를 뛰쳐나와 일주일에 절반만 일하고 나머지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쓰는 전문 프리랜서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먼 나라의 일일 뿐이다.

무엇이 그들과 나를 다르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내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변화를 위한 뜨거운 열망이 솟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뜨거움을 평생 동안 변함없이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다만 직장 상사가 내 뒤통수를 치고, 일은 해도해도 산더미처럼 늘기만 하고, 부쩍 커버린 아이는 호시탐탐 내 얇디 얇은 지갑을 노리는 것이 현실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쉽게 현실에 순응하고 꿈을 포기하게 된다. 쿨하게 살기 위해 쏟아야 할 노력이 몇 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내 회사의 부채 더미보다 크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말이다. 기업도 나와 다르지 않다.


존경 받는 기업의 성공 유전자

기업은 나를 닮은 몸집 큰 생명체이다. 나는 그 속에서 세포가 되고, 내가 속한 팀은 장기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벌어들이는 돈은 기업의 혈액이 되어 그 생명을 지속시켜 준다. 그렇다면 생명을 지속시켜 주는 ‘돈 잘 버는 능력’이 존경 받음의 본질인가? 물론 먹고 사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집착은 우리의 삶을 보잘 것 없고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좀 더 가치 있는 삶의 철학을 찾아 내야 한다.

오랜 풍상을 견뎌내며 최고의 위치에 오른 기업은 남다른 내적 에너지와 성공 유전자를 세포 깊숙이 새기고 있다.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꿈을 이뤄내는 존경 받는 기업을 만드는 유전자, 바로 그것은 ‘올바른 기업 문화’이다. 이제 그 몇 가지 유전자들을 살펴 보게 될 것이다.


비전을 갖자, 그리고 서로를 신뢰하자

“대중을 위하여 자동차를 만들자. 돈 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대를 소유할 수 있는, 그래서 멋진 곳에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아주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자. 모든 사람들이 한 대씩 살 수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마차가 사라질 것이고, 자동차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지금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선언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시절의 것이었고, 사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포드 자동차는 그저 그런 수 많은 자동차 회사들 중 하나였을 시절이었다. 하지만 포드의 직원들은 사장의 신념에 찬 선언에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꿈을 현실로 바꿔 놓을 수 있었다.

비전은 원대할수록 좋다. 하지만 당장은 현실적이지 못하기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비전이 ‘꿈을 현실로 구체화하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상하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간에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가 의심 없이 믿어야 한다. 아무나 자동차를 갖지 못하던 시절 포드 자동차가 T형 자동차의 기적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포드는 자신이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고, 강한 의지가 있었으며, 직원들은 그러한 사장의 모습에 완전한 신뢰로 보답했다.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변화를 즐기자

몇 해전 인텔의 앤디 그로브가 쓴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다. 책의 내용처럼 편집광이 되어 최정상의 위치에서도 끊임없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작은 성공에도 쉽게 자기 만족에 빠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불행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만족은 나태를 부르고 나태는 끝없는 추락을 부른다.

세계적인 소비재 생산 기업인 P&G의 CEO였던 리처드 듀프리는 회사가 20세기 동안 이루어 놓은 뛰어난 업적으로 인해 직원들이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많은 고민 끝에 회사의 각 제품들이 마치 서로 다른 회사에서 생산된 제품처럼 경쟁을 벌이는 제품 관리 방식을 도입했고, 이를 통해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1930년에 시작된 내부경쟁 제도는 P&G를 7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중 하나로 남아 있도록 해 주었고, P&G의 직원들이 변화를 익숙하고 짜릿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해 주었다.

이렇게 끊임 없이 변화를 추구하며, 그것을 즐기는 것은 존경 받는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성장의 동력이 된다. 다만 자기 파괴와 자기 부정이라는 뼈 속 깊은 아픔을 참아낼 수 있다면 말이다. 회사 내부를 달구는 변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기업을 영원히 살게 하는 힘, 그 자체이다.


스스로에게 정직해 지자

1980년 초반 미국 시카고에서 존슨&존슨의 타이레놀을 복용한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주입된 독극물이 원인이었으며,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시카고 지역에 공급된 타이레놀을 회수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존슨&존슨은 회사의 윤리 강령인 ‘우리의 신조(Our Credo)’를 고수하기 위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원인을 규명하기 전까지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도록 자발적이며 대대적인 홍보를 전개했고, 문제가 된 지역인 시카고 뿐만 아니라 전국에 공급됐던 시가 1억 달러에 달하는 3,000만병의 타이레놀을 전량을 회수하여 폐기했다.

시장의 반응은 놀라웠다. 단기적으로 주가 하락과 매출 감소에 직면했지만 아주 잠깐 뿐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존슨&존슨을 더욱 신뢰하게 됐고, 기업 윤리가 회사 로비의 장식물이 아닌 ‘기업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만약 존슨&존슨이 사람들을 기만할 의도로 ‘쇼’를 벌였다면, 더 이상 존경 받는 기업 목록에서 존슨&존슨을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존경 받는 기업 = 일관된 원칙을 간직한 기업

존경 받는 기업이 되기 위한 몇 개의 성공 유전자, 올바른 기업 문화의 단편들을 살펴 보았다. 그들은 모두 기업의 내부에서 비전, 신뢰 그리고 변화라는 화두를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고, 외부에서는 작은 이익을 위해 윤리적 가치를 내팽개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았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성공 유전자를 세포마다 각인해 두었다.

20세기 초 세계 석유 시장을 석권했던 스탠더드오일은 그 막강한 자본의 힘에 스스로 오염되면서 일관된 원칙들을 저버리기 시작했다. 결국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됐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소유주였던 록펠러 가문은 그 이후로도 수십 년간 비난을 받아야 했고, 그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또 다른 수십 년을 자선 사업으로 속죄해야 했다. 그리고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비로서 존경 받는 가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존경 받는 인생은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며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면 변화는 조금씩 시작될 것이다. 마치 나비의 날개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키듯, 어느 순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이 변해있을 것이다.

출처: (주)삼천리 사보, 200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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